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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논은 생물 다양성의 보물창고

중앙일보 2017.05.15 01:00 경제 10면 지면보기
장이권이화대학교 에코과학부생명과학과 교수

장이권이화대학교 에코과학부생명과학과 교수

지난해 2월이었다. 두루미 해설사의 안내로 우리는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소이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서니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눈을 내려 소이산 아래를 보니 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드넓은 논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해설사는 앞의 논에서 두루미를 찾아보라고 했다. 논은 경지정리가 되어있어 반듯하고 잘 닦인 포장도로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두루미는 없었다. 눈을 돌려 야산이 인접해 있는 논을 찾아보았다. 논은 자연지형을 따라 형성되어 있어 굴곡이 있고 계단식이었다. 그리고 하얀 점들이 보였다. 해설사는 그 점들이 두루미라고 한다.
 
해설사는 “왜 경지정리가 되지 않은 논에 두루미가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경지정리가 잘 된 논은 탁 트여있고, 포식자가 멀리서도 두루미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다. 이런 반듯하고 평평한 논은 원래 철원의 모습이 아니다. 철원은 화산활동으로 마그마가 흘러내렸고, 그 결과 지형이 대부분 경사져 있다. 경사진 곳에 형성된 논에서는 두루미들이 지형지물을 이용해 숨기 좋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논은 다양한 미세 환경을 제공한다. 같은 논이라도 햇볕이 잘 드는 곳, 물이 풍부한 곳, 영양물질이 있는 곳이 서로 다르다. 그리고 이런 논은 두루미의 까다로운 식성에 맞는 밥상을 차려줄 수 있다.
 
전통적인 논은 찬물받이와 둠벙이 존재한다. 논이 건조해지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수서동물은 땅속으로 들어가던지, 물이 있는 곳으로 피신해야 한다. 찬물받이는 논 둘레에 고랑처럼 파여 있어 외부의 찬물이 여기서 먼저 덥혀진 다음 논으로 들어온다. 이런 찬물받이는 수서동물의 훌륭한 피난처이다. 또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해두는 둠벙은 수서동물의 마르지 않는 공급처 역할을 한다. 특히 대부분의 습지생태계가 사라진 한국에서 논은 많은 수서동물의 마지막 안식처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생명체도 전통 농업생태계에 적응해 왔다는 증거가 있다. 수원청개구리는 논 한가운데서 벼를 붙잡고 노래하는 행동으로 유명하다. 이에 비해 수원청개구리와 유사한 청개구리는 논둑에 앉아서 노래한다. 재미있게도 수원청개구리는 원서식지와 비슷한 장소에서 청개구리처럼 앉아서 노래한다. 나는 수원청개구리가 청개구리와의 경쟁에서 밀려 논 안으로 이동했다고 판단한다. 단단한 지지대가 없는 논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벼를 잡고 올라가 노래하는 수밖에 없다. 즉 수원청개구리의 붙잡고 노래하는 행동은 논이라는 인위적인 환경에 진화한 결과다.
 
전통 농업생태계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다양한 환경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에 전통 농업생태계는 풍부한 쉼터, 먹이터, 피난처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높은 생물다양성으로 이어진다. 전통 농업생태계의 구조, 생명체들의 적응방법,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까지 아우르는 통섭적인 이해가 필요할 때이다.
 
장이권 이화대학교 에코과학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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