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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범죄영화냐 주변서 말려 ‘불한당’은 누아르보다 멜로

중앙일보 2017.05.15 01:00 종합 25면 지면보기
‘개인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변성현 감독은 “영화를 촬영하는 3~4개월 동안에도 리더 역할이 괴로워 스태프들과 의견 교환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개인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변성현 감독은 “영화를 촬영하는 3~4개월 동안에도 리더 역할이 괴로워 스태프들과 의견 교환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또 나온 ‘남자 영화’ 맞다. 그 흔한 ‘언더커버’ 영화다. 범죄조직에 위장 잠입한 경찰, 음모와 배신, 권력투쟁과 살인이라는 익숙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칸영화제 초청받은 변성현 감독
장편 영화 5개 개봉하는 게 목표
영화사에 한 획 그을 생각은 없어

17일 개봉하는 ‘불한당’의 변성현(37) 감독은 그래서 숱한 반대를 이겨야 했다. “잘못 만들면 언더커버물로 크게 흥행한 ‘신세계’의 모방작으로 보일 거라는 주변의 우려가 너무 컸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배우 못잖게 튀는 외모와 스타일로 ‘괴짜 감독’으로 불리는 그다. 고집을 피운 끝에 첫 번째로 받아든 성적표는 좋다. ‘불한당’은 오는 17일 열리는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다. 변 감독은 세 번째 장편으로 칸에 가는 감독이 됐다. 주연 설경구는 그를 ‘깐변(칸변을 세게 발음·칸에 가는 변 감독)’이라고 장난삼아 부른다.
 
영화 ‘불한당’.

영화 ‘불한당’.

변 감독이 이 영화를 밀어붙일 땐 다르게 하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왓(what, 무엇)’은 그대로 두고 ‘하우 투(how to, 어떻게)’를 바꿔보자 생각했다. 기존의 법칙을 조금씩만 배신해도 새로워진다고 믿었다.” 변 감독은 남자가 수트 차려입은 범죄영화의 전형적인 ‘멋있음’을 반복적으로 부순다. 설경구·임시완이 막 폼을 잡으려는 찰나에 거친 블랙 코미디를 내민다. 교도소 안의 제왕인 설경구는 열두 제자와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예수로 패러디되고 그 장면은 의도적으로 조악하다. 범죄조직의 우두머리로 나오는 배우 이경영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덕분에 거대한 음모와 배신의 드라마는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로 관객에 밀착된다. “건조한 이야기 말고 감정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한때 좋았지만 뒤틀린 사람 관계에서 느끼는 죄의식과 연민 같은 원초적인 감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변 감독은 말했다. 홍콩영화 ‘첩혈쌍웅’을 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와 리슈셴(李修賢·이수현)의 퀴어적 요소를 강조한 멜로 영화로 본다는 그는 ‘불한당’ 역시 누아르보다는 멜로에 가깝다고 했다.
 
임시완(왼쪽), 설경구 주연의 영화 ‘불한당’.

임시완(왼쪽), 설경구 주연의 영화 ‘불한당’.

관습에 반대하고 무거운 주제의식을 경계하는 것은 변 감독의 성향 때문이다. 그는 거창한 삶의 목표나 사회적 문제의식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때는 하지 말라는 것 다 하고 놀러만 다녔고 대신 12시간씩 만화방에 틀어박혀 만화만 봤다. 어머니가 하도 대학에 가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대학에 연기 전공으로 지망했다 붙었다. 졸업작품을 만들려는데 연출 전공 친구들보다 내가 잘 할 것 같아 아예 내가 찍었다.” 막노동판에서 번 돈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시나리오도 틈틈이 썼다. 지금도 “그때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최신 욕설’에 대한 코치도 받는다. 전형적이고 뻔한 ‘남자 영화’에서 변 감독이 쓸데 없는 힘을 뺄 수 있는 배경이다.
 
칸에 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보는 건 아니다. “물론 너무 기쁘지만, 보너스로 따라온 기분 좋은 일 정도”라고 했다. 변 감독은 “‘봉준호 감독처럼 영화사에 한 획을 긋고 싶다’는 식의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며 “첫 장편 ‘청춘 그루브(2012)’가 영화관 세 곳에서 개봉할 때 장편 5개만 할 수 있는 감독이 되자는 목표를 세웠고 그걸 이뤄서 행복해질 생각뿐이다”라고 했다.
 
다만 진부함을 깨야한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하다. 전작 ‘나의 PS 파트너’에서 “반듯한 지성을 무너뜨리고 싶었다”는 것처럼, 이번 영화에서는 “섹시하고 날카로운 설경구, 평소 바른 청년 이미지 대신 흰 도화지 위에 검은색을 칠한 임시완”을 만날 수 있다. 다음 영화는 “진부하기 그지 없는 정치물”이라고 소개했다. “익숙한 소재와 장르 자체를 겁낼 필요는 없다”며 “정치물은 분명히 곧 쏟아져나올 장르이지만 4년 전부터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있어서 억울하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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