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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경의 한류탐사] 한류5.0을 만들지 말자

중앙일보 2017.05.13 01:56 종합 24면 지면보기
홍석경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홍석경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때 한류2.0이란 말이 신선하게 다가올 때가 있었다. 이 용어는 국제 프로그램 시장의 방송권 구매를 통해 형성됐던 드라마 중심의 초기 한류와의 차이점을 강조하기 위해 채택된 용어로, 인터넷 사용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집단협력이 가능해진 웹2.0에 의존해 한류가 해외로 퍼져 나가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한류에 2.0을 더한 것이 새로운 매체 환경의 영향으로 한류가 새로운 확산 단계에 이르렀음을 내포하는 용어이기에 의미 있는 신조어였다.
 
그런데 이어서 이름과 지시 대상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한류3.0, 한류4.0이라는 용어가 태어났다. 추적해 보면 한류3.0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초 문화체육부가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를 결합해 ‘신한류’를 만든다는 정책으로 태어났고, 한류가 아직 미온한 지역으로 한류 확산을 위해 맞춤형 예산 투입이 이어졌다. 한류4.0은 정황상 박근혜 정부의 크리에이티브 코리아4.0과 관련이 있는 듯, “이제 한류는 4.0 시대를 맞아 새로운 성공의 길”을 찾아야 한다. “성큼 다가온 한류4.0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마치 이름이 있으니 대상이 존재한다는 강력한 유명론적 효과 아래 2013년 이후에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한류 담론들은 한류 위기설과 수출을 강조하는 한류 정책 속에서 탄생했고, 그러다 보니 산업중심적, 결과중심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산업은 왜 항상 수출 중심적이어야 하고, 문화마저도 그래야 할까? 우리는 여전히 제조업 수출국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게다가 한류야말로 수출 현상이라기보다는 수용 현상이라, 우리가 훌륭한 내용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그 어떤 인위적인 수출과 확산 노력보다 최선의 결과를 보장할 수 있는 분야다.
 
창조산업의 화려한 구호 아래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정규직 PD가 자살로 호소할 정도의 부당한 노동조건, 인력을 갈아 넣어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극심한 과로, 열정 노동, 감정 노동, 보호 없는 노동이 이어지고 있다. 한류 정책이 문화수출 정책과 동의어로 이해되는 악순환을 멈추고, 문화를 위한 지원은 이들이 배고프지 않고 죽지 않으며 창작과 제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과 개인의 삶을 병행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투자돼야 한다. 그러니 새 정부에 당부한다. 우리에겐 새로운 한류5.0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문화창작 분야 종사자들에게 정당한 노동환경을 마련해 주는 정책이 절실하다. 그것이 진정한 지속적 한류를 위한 문화정책이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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