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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미술] 가족의 재발견

중앙일보 2017.05.13 01:47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지은명지대 교수·미술사학

이지은명지대 교수·미술사학

곁에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지만 떨어지면 애틋하고 그리운 것이 가족이다. 가족은 고단한 세상으로 나가는 우리를 배웅하는 응원이자, 각자의 어깨에 얹힌 삶의 무게다. 경쟁에 지친 내 모습을 포근히 안아주는 안식처면서도 때론 가장 은밀하고 고통스러운 상처가 된다. 부모와 자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로 뭉친 주거공동체가 가족의 고전적 정의다. 요즘은 범위가 넓어져서 모르는 이들이 모여 유대감을 나누고 가족 기능을 수행하는 대안적 관계까지 ‘가족’이라 칭한다.
 

경기도미술관 ‘가족보고서’

안산 경기도미술관의 전시 ‘가족보고서’(7월 9일까지)는 가족공동체의 변화하는 의미와 소통의 문제를 파고든다. 재일동포 3세로 일본에서 나고 자란 김인숙은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재일동포의 삶을 사진 작업으로 보여준다. 작가 자신의 결혼식을 담은 영상 ‘리얼 웨딩’은 한국과 일본에서 치러진 두 번의 예식에서 경험한 문화적 혼재성에 주목했다. 그에게 가족은 무엇보다 ‘식구’다. 국적이나 민족에 상관없이 밥상에 둘러앉아 끼니를 함께하는 관계다. 한편 어느덧 가족생활의 중심으로 들어온 ‘반려동물’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는 쪽은 윤정미의 작품이다. 사진 속 반려동물들은 그들이 의지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가 그들에게 기대어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사람과 반려동물의 공존을 보여주는 윤정미의 ‘선규네 가족과 코코와 건달이’(부분). [사진 경기도미술관]

사람과 반려동물의 공존을 보여주는 윤정미의 ‘선규네 가족과 코코와 건달이’(부분). [사진 경기도미술관]

중국 작가 심치인은 ‘쥐족’이라 불리는 베이징 지하 벙커 쪽방촌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1950년대부터 베이징에 신축되는 건물은 의무적으로 지하 벙커를 만들었다. 90년대 개혁·개방 정책 이후 도시로 이주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자 치솟는 거주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지하 벙커에 모여든 사람들은 이미 100만 명에 이르렀다. 영상 속 젊은이는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네 평 남짓한 쪽방과 겨우 만난다. 거기서 이웃들과 몸을 부딪치며 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하고 산다. 보따리 장사로 생계를 잇는 그는 연극배우가 되어 벙커를 벗어나겠다는 꿈을 가지고 아버지의 만류에도 홀로 서기를 택했다. 내일을 모르는 공통체 안에서 소통의 빈도는 삶의 질과 무관하다.
 
이서영의 영상 ‘드물게 찾아온 시간’을 보노라면 서늘해진다. 작가는 부모와 손글씨로 나눈 필담을 배우들의 대사로 재연한다. 글은 얼굴을 마주할 때 차마 말하지 못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다. “넌 무척 네 일을 즐기는 것 같은데, 너 혼자만 행복해도 되는 거니?” 어머니의 뾰족한 질문은 부모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자식에게 당황스럽다. 감정의 직설적 토로는 자식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나한테 안 미안해요? 진짜 하나도?” 빨간 사인펜으로 갈겨쓴 글씨는 가슴속에 억눌렸던 외침이다. 서운함과 원망, 분노는 어디서 온 걸까. 가족은 안다.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는 것을.
 
가족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상처 같다. 서로 보듬어야 탈나지 않고, 불며 싸매야 덧나지 않는다. 급격한 변화와 숱한 갈등 속에서도 가족이 존속하는 것은 벌주기보다 용서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처벌은 과거로 소급하고 관용은 미래를 본다. 가족에게 필요한 마음 씀씀이가 여기에 있다.
 
이지은 명지대 교수·미술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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