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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일과 가정의 균형] 저녁이 있는 삶?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해

중앙일보 2017.05.13 00:02
가족 위해 시간·에너지 더 쏟아야 … 일은 즐겁게 살기 위한 수단
그는 두 아이를 둔 평범한 직장인이다. 경력이 오래된 만큼 회사에서 맡고 있는 일도 많은 편이다. 특히 그가 근무하는 파트는 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도 많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물론 가족 생각하는 마음이야 항상 가득하지만, 힘들게 일하고 집에 오면 그냥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서 아내와 살가운 대화를 나누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장으로서 열심히 하는 만큼, 가족들도 그런 그를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딸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무슨 말을 해도 들은 척 만척하고, 아내도 예전만큼 따뜻하지 않다. 그동안 잘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섭섭한 마음도 든다.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싶지만 업무에 집중하다 보니 맞추기가 힘들고 방법도 잘 모르겠다. 휴일에 가끔 가족들과 나들이를 가거나 외식을 해도 소외되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서운한 마음에 말다툼이 일어나 결국 돌아오는 길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한다. 예민한 나이의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갖고 있다. 동시에 가족을 위해 일해 온 자신을 몰라주는 것에 대해 섭섭함을 느낀다. 과중한 업무는 한국 직장인의 자화상이다. 마음은 원하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지친 마음으로 아내와의 살가운 대화란 가능하지 않다. 피곤한 몸으로 애들과의 즐거운 놀이란 가당치 않다. 아내는 차갑고, 딸아이는 무관심하다. 당연지사(當然之事)라고 해야 할까. 무심한 행동은 소외감을 불러오고, 어설픈 노력은 어색함을 가져온다.
 
일 위해 삶 희생하는 한국인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2163시간이다. 하루 평균 10시간 30분이다. 멕시코 다음으로 길고, 네덜란드보다 800시간 더 일한다. 노동생산성은 34개국 중 28위고, 삶의 질은 135개국 중 78위다. 열심히 일하는데 능률은 안 오르고, 성실히 사는데 삶은 최악이다. 한국인의 불쌍한 자화상이다. 우리는 인생을 못 즐기면서 불필요한 야근과 휴일 근무에 지쳐가고 있다. 지친 머리에서 혁신과 창조가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OECD 34개국 중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33위다. 직장인의 인생목표 1위는 화목한 가정이다. 2위인 높은 연봉보다 3배나 높다. 직장인의 꿈 1위는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다. 최고의 직장은 스트레스 덜한 곳이고, 최악의 직장 상사는 일 중독 선배다. 한국인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우리는 매일 일을 위해 삶을 희생하고 있다. 우리는 가정을 포기하면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와 자녀 간 소통이 단절되는 것은 당연하다.
 
일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숨 쉬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로 소비한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살만큼 돈을 벌면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과도한 일 중독과 무한경쟁을 부추긴다. 일이 단지 돈 버는 수단이라면, 열정과 보람은 사라진다. 일이 실망과 공허로 채워진다면, 끔찍한 형벌이다. 일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다. 인간은 소통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일을 통해 사회 구성원이 되어 아픔과 기쁨을 공유한다. 일은 가치를 실현하는 목적이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우리는 일을 통해 사회적 정체성, 독창성, 존엄성을 얻는다.
 
일과 가정 두마리 토끼 잡기
 
가정이란 무엇일까. 가정은 공동 운명체다. 가정은 서로 달라도 차별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 돕고 사는 곳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미래를 꿈꾼다. 가정은 인간으로서 도리를 배우는 곳이다.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배우자는 배우자답고, 형제는 형제다워야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가정에서 배운다. 가정은 사랑의 샘터다. 불평도 많지만 대우도 최고다. 어떠한 허물과 실패라도 받아준다. 가정에서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바깥에서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일과 가정, 둘 사이에서 직장인 모두가 고민하고 있다. 성공적인 직장과 화목한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가능할까. 그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일까.
 
첫째, 함께 바꿔보자. 우리 모두 뭔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뾰족한 방법이란 게 있지 않을까. 우선 상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동료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어보자. 구조적인 문제라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바꿔보자. 주말에는 출근하지 않는 원칙을 실현해 보자. 미움받는 용기가 필요하다. 저녁 있는 삶을 고집하는 원칙을 실천해 보자. 바꾸지 못할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자.
 
둘째,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일주일에 한두 번 꼭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보자. 30분이나 1시간이면 충분하다. 카페에 홀로 앉아 커피 한 잔을 즐겨보자. 낯선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보자.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한 달에 한두 번 꼭 아내와 오랫동안 안 갔던 레스토랑에 가 보자. 함께 술 한 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해 보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매주 일요일 아침 꼭 아이들과 따끈한 식사를 같이 하자. 할 말이 없고 어색하더라도 묵묵히 가족의 얘기를 들어보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셋째, 충분히 기다리자. 미안함은 기대를 저버린 데서 온다. 이해받기 전에 이해해야 한다. 섭섭함은 기대에서 온다. 지나친 기대는 항상 갈등을 유발한다. 소외감은 불통(不通)에서 온다. 배려받기 전에 배려해야 한다. 미안해 하지도 말고, 섭섭해 하지도 말고, 소외되지 말자. 사람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는 법이다. 가까운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세월이 필요하다. 지금도 안 늦었다. 가족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투자도 없이 어떻게 수익을 바라는가?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즐겁게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삶은 축제가 되어야 한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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