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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명의 샐러리맨 코칭스쿨] 이심전심은 없다

중앙일보 2017.05.13 00:02
계급장 떼고 소통하고 싶다는 사장, 가능할까. 사진은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의 한 장면. [영화사 제공]

계급장 떼고 소통하고 싶다는 사장, 가능할까. 사진은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의 한 장면. [영화사 제공]

서로의 좋은 의도를 아는 게 소통의 출발점... 내 말만 받아주길 기대해선 안돼
 
“코치님, 어떻게 하면 계급장 떼고 대화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코칭했던 L사장의 질문이다. “계급을 강등하면 됩니다.” 우스개로 말했는데 의외의 성과를 얻었다. L사장은 이 대화를 통해 소통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섰다. 계급장을 떼고 대화하고 싶다는 말은 수평적인 대화를 하고 싶다는 거였고,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성과를 잘 내고 싶다는 말이었다. L사장이 말했다. “의도를 말해주지 않으면, 코치님도 못 알아 듣는군요.”
 
그렇다. 말해주지 않으면 상대방이 어떻게 알겠는가? 갈등이 심한 두 사람이 찾아왔다.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라니까!’ ‘내 의도도 그게 아니야!’ 두 사람은 서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내가 말했다. “제가 어젯밤에 기가 막히게 좋은 꿈을 꾸었는데, 어떤 꿈을 꾸었는지 알아맞혀 보시겠습니까?” 두 사람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두 분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네요.”
말을 해야 마음도 통하는 법
 
김영윤 화가의 작품.

김영윤 화가의 작품.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없다. 오직 삼천 년 전에 딱 한번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에 불과하다.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꽃을 빙글빙글 돌리자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오직 가섭만이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었다는 말에서 유래한 말이다. ‘염화시중의 미소’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 자신의 좋은 의도가 전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의도를 알아듣게 말해줘야 한다.
 
반대로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으면, 상대방의 좋은 의도가 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 사람의 좋은 의도가 뭘까?’ 스스로 생각하거나, ‘당신의 좋은 의도가 뭔가요?’라고 물어야 한다. 서로의 좋은 의도가 통할 때 비로소 소통의 길이 열린다. 서로 좋은 의도를 알아주는 것은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지옥에는 좋은 의도만 있고, 천국에는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이 있다’는 말이 있다. 자신은 의도로 평가받기를 바라면서, 상대방에 대해선 좋은 의도를 알아주지 않고, 표현된 말과 행동으로만 평가하는 이중 잣대를 빗댄 말이다.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알아주는가, 알아주지 못하는가, 이게 바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다.
 
소통에 대해 강의를 하다 보면 ‘소통을 잘하면 모든 게 해결됩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때가 바로 결정적 순간이다. 질문에 즉시 해답을 주려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답이 있다. ‘소통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거다. 잠시 대답을 멈추고 질문하는 사람의 ‘좋은 의도’를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소통을 잘하고 싶은데, 소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어서 답답하게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좋은 의도는 소통을 잘하고 싶은 거다. 나는 “소통을 정말 잘하고 싶으시군요”라고 말해준다. 이 순간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먼저 알아주면 상대방은 극적으로 변한다. “그래도 소통을 잘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요.” 상대방이 스스로 강사가 하고 싶은 말을 해준다. 이렇게 되면 강사와 질문하는 사람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설득하지 않고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먼저 알아주고 난 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이게 바로 소통의 순서다.
 
말의 한계를 인정해야
강의를 하는 직업이라 또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어른이 교육으로 변할까요?’ 밥 먹듯이 듣는 질문이다. 예전엔 이런 질문에 대비해 잉크를 가지고 다녔다. 이 질문을 받으면, 컵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난 후에 묻는다. “지금 컵에 들어있는 게 뭔가요?” 잉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컵에 물이 넘치도록 계속 물을 붓고 난 후에 다시 묻는다. “지금은 어떤가요?” 그리고 자신 있게 설명한다. “잉크가 있는 컵에 물을 조금만 부으면 잉크 물이지만, 계속해서 많이 부으면 깨끗한 물이 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생각이 바뀔 정도로 많은 교육을 받으면 비록 어른이라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난 후엔 강의실 분위기가 좋지 않게 변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사람들은 설득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강사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젠 알고 있다. “어른이 과연 교육으로 바뀔까요?”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이 지옥과 천국으로 가는 갈림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대답을 잠시 멈추고, 이 질문을 한 사람의 좋은 의도가 뭔지 생각해보자. 그렇다. 비록 어른이라도 교육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거다. 이때는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알아주면 된다. “어른들도 교육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질문을 한 사람은 한층 고무되어 다시 묻는다. “그래도 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비로소 강사의 의견을 말해도 되는 순간이 된다. “아마도 기질과 성격은 바뀌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생각의 전환이 있으면, 행동의 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은 강사의 말을 비로소 받아들인다.
 
소통에 있어서 순서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말의 한계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는 순간, 다른 측면은 말하지 않은 게 된다. 선을 그어 놓고 볼록하다고 말하는 순간, 반대 측면에서 보면 틀렸다. 반대 측면에서 보면 오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다. 말은 언제나 표현되는 순간 틀린 말이 된다. 말의 이런 한계를 알아차리는 것이 소통의 비결이다. 내가 한 말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언제나 틀린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면 상대방을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저 친구는 매사에 부정적이야!’ ‘저 친구는 매사에 토를 달아!’
 
말은 선택이다. 우리가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여러 가지 측면 중에서 한 가지 측면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진실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내 말은 언제든지 반박받을 수 있고, 오해받을 수 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있는 그대로 상대방이 받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인간관계에 시한폭탄을 설치하는 것과 같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얼마든지 있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내 말은 언제든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게 바로 소통의 비결이다.
 
김종명 - 리더십코칭연구소 대표,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다. 기업과 공공기관, 대학 등에서 리더십과 코칭, 소통 등에 대해 강의와 코칭을 하고 있다. 보성어패럴 CEO, 한국리더십센터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리더 절대로 바쁘지 마라] [절대 설득하지 마라] [코칭방정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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