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공장서 맞벌이해도
박봉 때문에 생계유지 빠듯
부인들 장사 통해 고수익
경제난 해소없인 막기어려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상이군인들이 근무하는 낙랑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을 방문해 생산라인을 돌아보고 있다. [노동신문]](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11/16/72d9142d-0b0b-4bda-a799-220d66c8b4c6.jpg)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상이군인들이 근무하는 낙랑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을 방문해 생산라인을 돌아보고 있다. [노동신문]
북한은 전쟁 중인 1953년 5월에 생활필수품을 생산하기 위해 처음으로 함흥시내의 영예군인들로 함흥영예군인철제생산협동조합을 설립했고, 1961년 이 조합의 품종을 확장시켜 최초의 함흥영예군인수지공장을 창립하였다. 이후 북한은 평양 만경대영예군인만년필공장, 단천영예군인반도체공장, 경성영예군인주사약공장 등 각 도·시·군에 영예군인공장들을 건설하고 영예군인들과 가족들이 공장에서 불편 없이 쉬운 일을 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한다.
북한 내부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주민들을 교양하는 차원의 이러한 사회적 우대는 최근 북한경제의 급격한 시장화와 함께 맥을 추지 못한다”고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상이군인들이 근무하는 낙랑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을 찾아 근자들과 사진촬영을 했다. [노동신문]](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11/16/9560bcd9-79de-4778-bbec-5647a047453c.jpg)
김정은 위원장이 상이군인들이 근무하는 낙랑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을 찾아 근자들과 사진촬영을 했다. [노동신문]
대북 소식통은 “이미 공장을 떠나 시장으로 진출한 영예군인 부인들이 공장으로 발길을 돌리기에는 북한경제가 너무 많은 문제점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김수연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kim.suyeo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