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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 사이언스] 여왕의 몰락

중앙일보 2017.05.09 01:27 종합 24면 지면보기
강찬수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그 화려함은 빛을 잃었고, 곱던 자태도 어느새 시들어버렸다. 나비 날갯짓을 따라 퍼져 오던 은은하고 상큼한 향기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일컬었지만 이제 그 이름에 걸맞은 풍경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5월까지 열리던 놀이공원의 튤립 축제는 3~4월로 넘겨준 지 이미 오래다.
 
5월이 돼야 피기 시작하던 아파트 단지나 도로변 공원의 영산홍 도 이젠 4월 하순에 피고 5월이 오기 전에 지기 시작한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가로수는 신록을 채 느끼기도 전에 벌써 잎이 무성해졌다.
 
이런 상황이니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를 태연히 읊고 앉아 있기는 어렵다.
 
여왕에게는 장미가 남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그 장미의 가시 때문인지 성격이 고약해진 것도 같다.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서울에서도 5월에 낮 최고기온이 30도가 넘는 날이 흔해졌다. 7월 한여름 더위가 5월에 3~4일씩 나타나는 것이다. 올해는 5월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지난 3일 서울의 낮기온은 30.2도를 기록했다.
 
올해만이 아니라 5월 기온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전국 평균 기온은 18.6도로 평년(1981~2010년 평균값)보다 1.4도나 높았다. 1973년 기상청이 체계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5월 평균기온으로는 가장 높았다. 5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여왕은 더위뿐 아니라 정말 톡 쏘는, 눈과 목을 따갑게 하는 오존 오염까지 곁들인다. 이제 오존주의보는 4월 하순부터 전국 곳곳에서 발령되기 시작했고, 5월은 온통 오존주의보로 몸살을 앓는다. 5월은 6월과 더불어 연중 오존 오염이 가장 심한 때가 됐다. 5월의 자외선도 연중 가장 강한 편이다.
 
게다가 황사 먼지까지 흩날리면서 이래저래 숨 쉬기도 어려운 계절이다. 드물던 5월 산불도 이제 흔해졌고, 크게 번지고 있다.
 
어쩌면 어린이날을 4월로 옮기자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식목일을 3월로 옮기자는 얘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4월이라고 ‘왕관’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스모그 미세먼지로 가득한 데.
 
이제 와서 기품을 잃어버린 여왕을 아쉬워해도 별수 없다.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캐시미어 양털을 얻기 위해 양과 염소를 방목해 초원을 사막으로 만들어버린 우리 인류의 자업자득이니까.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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