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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못하겠다’는 생각

중앙일보 2017.05.08 02:39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호정문화부 기자

김호정문화부 기자

작곡가 윤이상은 1958년 9월 부인에게 편지를 썼다. “어제 저녁 음악회에서 존 케이지라는 미국 사람의 피아노 작품을 들었는데 멜로디는 전혀 없고 한참 만에 문득 생각난 듯이 건반 하나씩을 누르는 거였소.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는 것은 얼마 안 되고 그나마 장구 치듯이 손바닥으로 피아노 뚜껑을 탁 치더니 다시 뚜껑을 덮고, 또 팔꿈치로 건반을 꽝 치더니 가끔 장난감의 호각을 불고, 옆에 라디오를 설치해 놓고 라디오 소리를 내고….”
 
최첨단 작곡 기법의 박람회와도 같았던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음악제에 참가한 날이었다. 윤이상은 “참가자들은 모두 앞장서기를 자랑하는 터무니없는 곡을 쓴다”며 “여기 모인 괴짜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고 신기한 것으로 앞장서는 선수도 되기 싫다”고 썼다.
 
윤이상은 1956년 유럽에 왔다. 그러니까 2년 만에 유럽 음악계에 회의를 느낀다. 말투를 보면 소외감이라는 표현이 맞다. 서양음악에 대한 경외심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젊은 작곡가의 생각이 이렇게 방향을 바꿨다. 음악학자 홍정수는 “윤이상은 유럽 작곡가처럼 못하겠다는 걸 빨리 파악했다”고 분석한다.
 
한국 궁중음악을 서양 오케스트라로 표현한 ‘예악’(1966)은 이렇게 나왔다. 윤이상의 출세작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여흥음악으로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고국의 음악을 자신의 기법으로 선택했다. 원래는 서양음악의 전통을 한국에 이식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윤이상이었다.
 
핵심은 ‘못하겠다는 생각’이다. 존 케이지는 음악에서 작곡가가 쥐고 있던 주도권을 폐기했다. 그 유명한 ‘4분 33초’에서 작곡가가 한 일은 없고 멍하니 앉아 있는 피아니스트와 이 상황을 의아해하는 청중이 작품을 채운다. 윤이상은 음악계의 총아인 케이지처럼 엉뚱한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못하겠다는 생각’은 많은 예술가를 관통한다. 모차르트는 좋은 도시에서 음악감독직을 얻고 싶었지만 못했다. 언제나 시대와 불화했던 베토벤은 말할 것도 없다. 브람스는 베토벤 극복이 평생의 화두였지만 부족하다 여겼다. 슈만은 피아니스트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해 괴상한 기계로 손가락 길이를 늘렸을 정도로 평생 콤플렉스와 살았다.
 
좌절했을 때 예술이 나온다는 건 잔인한 법칙이다. 아름답고 진취적인 작품을 만날 때면 그 뒤에 있을 낙담 또한 봐야 한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좌절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법칙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난 못하겠다’라는 감정을 마주하는 보통 사람들은 이처럼 거대한 예술의 법칙 안에 있다.
 
김호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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