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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우의 뉴스로 만나는 뉴욕] 이웃과 전기 사고팔기 … 브루클린 ‘에너지 장터’ 떴다

중앙일보 2017.05.08 01:14 종합 20면 지면보기
뉴욕의 현대무용가 에밀리 페트리가 브루클린 에너지 장터 회원에 가입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 EO3]

뉴욕의 현대무용가 에밀리 페트리가 브루클린 에너지 장터 회원에 가입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 EO3]

요즘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선 일대의 50여 가구를 묶어 민간인끼리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에너지 장터가 화제다. 화력발전이나 수력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기를 가정이나 공장에 일방통행식으로 공급하는 종래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다.
 

개인 간 거래 ‘마이크로 그리드’ 실험
태양광 패널 50여 가구 시범 운영
스마트폰 앱 통해 남는 전기 거래
실시간 수요 파악, 계산까지 끝내

장터명은 ‘브루클린 마이크로 그리드’. 그리드는 그물망으로 연결된 구조를 일컫는 것으로, 마이크로 그리드는 전기 생산자와 소비자가 매우 촘촘하게 연결돼있다는 의미다. 전기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P2P(peer-to-peer)’ 거래가 이뤄지는데, 이들의 역할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인터넷에서 개인과 개인이 연결돼 파일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의사이면서 뉴욕의 제약회사로 출·퇴근하는 패트릭 쉬넬은 브루클린의 3층짜리 단독주택에서 4인 가족을 이루고 산다. 5년 전 허리케인이 지나간뒤 지하층이 침수되고 1주일 이상 전기공급이 끊기는 상황을 겪은 뒤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자신이 사용할 전기는 직접 태양에너지를 통해 뽑아쓰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선 지난해 마이크로 그리드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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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넬은 “4인 가족의 전기료가 한 달에 200달러(약 23만원) 정도 나왔는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서 이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됐다”며 “이후에 남은 에너지를 주변에 팔면서 추가 수익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휴가철에 장기간 집을 비울 때도 생산된 에너지를 동네주민에게 팔아 휴가비의 일부를 마련할수 있었다. 모든 게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원격 조정이 가능하다.
 
인근에 사는 줄리아나는 필요할 때 전기를 마이크로 그리드에서 받아쓴다. 그는 “지난달 앱을 통해 전기료 명세서를 보니 159㎾/h의 전기를 7센트로 받아써서 한 달간 11달러(1만2000원)를 지불했다.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싸게 이용하는 셈”이라며 흐뭇해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가정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브루클린 마이크로 그리드 미터를 거쳐 동네별로 설치된 블록체인으로 이동한다. 마이크로 그리드 미터는 자신이 사용하고 남은 에너지를 내보낼때 기록해두는 출납계 같은 역할이다. 동네주민의 에너지 수요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는 블록체인이 저장해둔 에너지를 필요한 곳으로 내보내고 계산까지 끝낸다.
 
기존 마이크로 그리드가 전기회사의 주도로 학교나 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교류였다면, 브루클린 마이크로 그리드는 순수하게 개인 차원에서 에너지를 사고판다는 점에서 미국 전역에서 새로운 시도로 꼽힌다.
 
브루클린 마이크로 그리드는 스타트업인 LO3의 플랫폼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LO3의 로렌스 오시니 대표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며 “단지 민간인끼리 에너지를 사고팔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면 브루클린 마이크로 그리드 사업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 사업이 50가구에 묶여있는 것도 규제 해제를 앞두고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범사업을 시작 때만 해도 곡절이 많았다. 뉴욕주 정부는 친환경에너지 정책을 펼치면서도 민간인 에너지 거래에 관한 규제를 푸는 데는 미온적이었다. 오시니는 하는 수 없이 구글어스를 통해 브루클린 일대 가정집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집을 찾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시범사업에 끌어들일 수 있었다.
 
초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 그리드 사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솔라비전 컨설팅에 따르면 2012년만 해도 미미하던 마이크로 그리드 시장은 매년 10% 이상씩 성장해 2030년이면 5000억 달러(약 560조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활발한 독일의 존네 시에서는 8000여 가구가 민간인 에너지 장터를 꾸렸고, 호주 퍼스에서도 에너지 장터가 시범운영중이다. 각 가정으로 전기를 공급하는데 애로를 겪고있는 방글라데시 정부 또한 시 외곽의 동네끼리 장터로 묶어주는 마이크로 그리드 사업을 접목중이다.
 
한국선 전기요금 인상 우려, 법안 묶여
 
국내에서는 마이크로 그리드 시장이 뜨겁지 않다. 민간인끼리 전기를 사고팔 경우 다양한 형태의 전력판매사업자가 등장해 전기요금이 인상될 것이라는 이유로 관련법안 통과가 미뤄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민간이 주도하는 2차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을 오는 7월 확정할 계획이나 규제 투성이인 상황에서 활성화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심재우 뉴욕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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