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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2300억원 번다, 켄터키 더비 ‘마술’

중앙일보 2017.05.08 01:00 종합 26면 지면보기
7일 미국 켄터키주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 열린 제143회 켄터키 더비. 올웨이스 드리밍이 우승을 차지했다. [루이빌 AP=뉴시스]

7일 미국 켄터키주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 열린 제143회 켄터키 더비. 올웨이스 드리밍이 우승을 차지했다. [루이빌 AP=뉴시스]

한 남자는 말을 타는 기수, 또 한 사내는 말을 돌보는 조교사였다. ‘기수’ 존 벨라스케즈(46·푸에르토리코)와 ‘조교사’ 토드 플레처(50·미국)는 24년 전 미국 뉴욕 경마장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지난 20여년 동안 둘은 수천 번의 경주를 함께 했다. 다른 파트너와 짝을 이뤄 경주에 나서면 “바람을 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두 사람의 사이는 각별하다. 그 사이 벨라스케즈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고의 기수가 됐다. 꿈 많던 청년 플레처는 7차례나 북미 챔피언 조교사에 올랐다.
 

143년 전통 경마대회 경제 효과
입장권만 100만원 … 하루 16만 인파
TV시청률·매출, 수퍼보울 버금 가
인구 60만 루이빌 연 관광객 150만
100여년 전 의상 입은 팬도 볼거리
우즈 전 여친 본 등 스타들도 몰려

벨라스케즈와 플레처는 7일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 열린 143회 켄터키 더비에서 또 한차례 역사적인 우승을 이뤄냈다. 이날 경주에 출전한 20마리의 말 중에서 플레처의 냉철하고 혹독한 훈련을 받은 말 올웨이스 드리밍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벨라스케즈는 이날 올웨이스 드리밍을 타고 1.25마일(2000m) 거리를 2분03초59의 기록에 주파했다. 올웨이스 드리밍의 마주는 미국의 유명한 억만장자이자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플로리다 팬더스의 구단주 빈센트 비올라(61·미국)다. 벨라스케즈는 “플레처는 항상 나를 믿고 기회를 줬다. 더구나 최고의 말을 만난 것도 행운이다. 이런 일들은 경마에선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의 우승 스토리는 미국의 주요 언론을 통해 상세히 전해졌다. 미국인들이 이 경마 이벤트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켄터키 더비가 강력한 문화 콘텐트인 동시에 엄청난 경제효과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3세마가 겨루는 켄터키 더비는 경마 종주국 영국의 더비를 모방해 지난 1875년 탄생했다. 20여 년이 지나 지금의 경기장 형태가 갖춰졌고, 영국과는 다른 상업적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켄터키 더비를 개최하는 처칠다운스 주식회사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켄터키 더비가 보여주는 가장 큰 가치는 ‘고전’이다. 100년 전 의상을 재현한 듯 남자들은 재킷에 나비 넥타이, 여자들은 정장에 큰 모자를 쓰고 경기장을 찾는다. 더비 전날 폭우가 내렸고, 더비 당일에도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이들의 드레스 코드는 변함이 없었다.
 
지난해 켄터키 더비의 자선 갈라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전 여자친구 린지 본(맨 오른쪽)과 우즈의 전 아내 엘린 노르데그렌(뒤쪽 오른쪽 둘째). 본과 노르데그렌은 우연히 만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린지 본 트위터]

지난해 켄터키 더비의 자선 갈라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전 여자친구 린지 본(맨 오른쪽)과 우즈의 전 아내 엘린 노르데그렌(뒤쪽 오른쪽 둘째). 본과 노르데그렌은 우연히 만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사진 린지 본 트위터]

미국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관람객들이 몰려든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전 여자친구 린지 본(미국)이 지난해 우즈의 전 아내 엘린 노르데그렌(스웨덴)과 ‘친구’가 된 사실을 처음 공개한 곳도 켄터키 더비였다. 많은 스타들이 몰려들고, 이들을 보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루이빌을 찾았다. 올해도 인구 60만명의 도시에 자리잡은 처칠다운스에만 16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루이빌의 연 관광객이 150만명이나 되는 건 켄터키 더비로 대표되는 경마 콘텐트 덕분이다.
 
특별한 문화는 비싸게 팔리고 있다. 켄터키 더비의 입장권은 약 900달러(100만원)나 된다. 루이빌 시내의 숙박비·주차료 등도 일주일 동안 몇 배로 뛰었다. 현지 언론들은 미국의 공중파 방송인 NBC가 중계권료를 지불하고, KFC 등을 보유한 식품회사가 스폰서로 나서면서 생기는 경제효과가 2억 달러(2300억원)를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켄터키 더비를 중심으로 루이빌이 1년 동안 경마로 벌어들이는 돈은 5억 달러(5700억원)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켄터키 더비를 보기 위해 몰려들 경마팬들. [루이빌 AP=뉴시스]

켄터키 더비를 보기 위해 몰려들 경마팬들. [루이빌 AP=뉴시스]

루이빌의 경마 붐은 단발성이 아니다. 켄터키 더비를 시작으로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와 벨몬트 스테이크스가 2~3주 간격으로 열린다. 여기서 모두 우승하면 삼관마(트리플 크라운)가 된다. 매년 4만 마리의 경주마가 생산되는 미국에서 말 한 마리가 주요 3개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1978년을 마지막으로 삼관마가 나타나지 않다가 2015년 아메리칸 파로아가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자 미국 경마 팬들은 열광했다.
 
삼관마에 오르면 곧바로 은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주마로서 더이상 오를 곳이 없기 때문이다. 경주를 하지 않는 대신 씨수말이 된다. 2015년 CNN에 따르면 아메리칸 파로아의 1회 교배료는 20만 달러(2억3000만원)나 됐다. 씨수말은 연 100차례 정도 교배를 하기 때문에 아메리칸 파로아의 2016년 ‘은퇴소득’은 2000만 달러(약 230억원)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경마산업은 2015년 기준으로 1000억 달러(약 114조원) 규모에 이른다. 미국 소도시에서 열리는 켄터키 더비가 단판 스포츠 이벤트로는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인 수퍼보울 다음으로 높은 TV 시청률과 매출을 올리는 건 단순한 경주를 넘어서 미국적인 가치와 전통, 스토리가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루이빌(미국 켄터키주)=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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