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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월 경상수지 흑자, 그 뒤엔 투자 감소 주름살

중앙일보 2017.05.08 01:00 경제 3면 지면보기
경상수지는 상품수지,서비스수지, 소득수지, 경상이전수지로 구성된다. 이 중 비중이 큰 분야가 상품수지다. 한국에서 상품 수출액이 수입액보다 많으면 상품수지가 흑자를 내면서 경상수지도 흑자가 된다. 1997년 말에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 현실에서 경상수지가 흑자가 되면 달러가 국내에 쌓이게 돼 일단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경기 불확실 기업·가계 돈 쌓아둬
저축률 36%, 투자보다 6.5%P 앞서
KDI “투자 증가세 둔화할 수도”
“서비스업 키워 내수 활성화해야”

자료 : 한국은행

자료 : 한국은행

한국은 지난달까지 60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올렸다.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 986억8000만 달러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이런 흑자는 한국이 안정적인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주요 근거로 작용한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다른 측면이 있다. 이론적으로 경상수지는 국민이 일정 기간 벌어들인 총소득에서 소비와 투자 등 총지출을 뺀 것이다. 총소득이 늘어 경상수지 흑자 폭이 커질 수도 있지만, 소비와 투자가 줄어도 수치상으로는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주로 후자에 기인한 것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향후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는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 총투자율은 지속해서 하락 추세다. 국내 총투자율은 국내 가처분소득이 얼마만큼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투자에 쓰이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수치는 2007~2008년에 33% 수준이었지만 2013년 이후 20%대에 머물고 있다. 반면 향후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탓에 기업이나 가계는 돈을 쌓아두기만 하고 있다. 국내 총저축률은 지난해 35.8%로 국내총투자율(29.3%)을 6.5%포인트 상회하고 있다.  
 
향후 전망도 밝지 못하다. 최근 여러 지표에서 경기 회복세의 기운이 싹트고 있지만, 투자는 한풀 꺾일 수 있다는 경고가 벌써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내놓은 ‘최근 경제동향 5월호’에서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증가세가 둔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자료 : 한국은행

자료 : 한국은행

현재 투자를 이끄는 반도체 부문의 선행지표 둔화가 근거다. KDI에 따르면 전년 동월대비 반도체 제조용장비 수입액 증가율은 3월 151.3%에서 지난달 60.1%로 둔화했다. 특수산업용기계 수주액 증가율도 지난해 12월 282.2%에서 올 2월 7.4%, 3월 37.5%로 낮아졌다.  
 
건설투자에 대한 전망도 비슷하다. 3월 건설 수주는 전년 동월 대비 24% 감소했고, 주택 인허가와 착공도 각각 16.4%, 31.5% 줄었다. 내수 감소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 유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여기에 급속한 고령화도 경상수지 흑자 확대 요인으로 꼽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저축률이 높아짐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는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이어져 소비와 투자에 모두 부정적인 요인을 미치게 된다.  
 
이런 국내 경제·사회 구조로 인해 경상수지가 불어난 상황에서 경상수지 흑자 폭이 크다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통상 압박을 받아 한국 입장에선 당혹스럽다. 지난달 환율조작국 지정은 일단 피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앞날은 안갯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FTA를 재협상(renegotiate)하거나 종료(terminate)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올 1∼4월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60억4000만 달러다. 지난해 같은 기간(91억4000만 달러)보다 33.9% 줄었지만 미국은 여전히 불만스럽다는 모습이다.  
 
결국 투자 확대 유도 등을 통해 적정 수준의 경상수지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현재 큰폭의 경상수지 흑자는 투자와 소비 부진이 반영된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투자 활성화와 서비스업 육성 등을 통해 내수 경기를 활성화해 경상수지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 성장을 보는 시각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경제 성장은 ‘돈의 축적’이 아니라 ‘생산의 증가’로 따진다. 생산이 늘려면 고용의 증가나 생산성 향상이 바탕이 돼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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