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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의 변방에서] 유령들도 투표를 한다

중앙일보 2017.05.06 01:38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4월 19일부터 5월 2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가 열렸다.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이렇게 유력 정당의 후보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은 그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도 좋을지를 판단했다.
 
5월 2일 마지막 토론회의 의제 중 하나는 ‘교육’이었다. 나는 어느 후보든 대학원생 조교의 행정노동이나 시간강사의 강의노동에 대한 처우 개선을 한 번쯤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다. 나는 지금은 대학에서의 연구와 강의를 그만두었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이전의 나와 닮은 젊은 연구자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마치 ‘유령’과도 같은 삶을 살아간다. 과정생 시절에는 조교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을 달고 대학의 여기저기에서 행정노동을 한다. 대개는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임금은 등록금 감면의 형식으로 지급받으면서 언제든 지도교수의 여러 사적 노동에 동원될 각오 역시 해야 한다. 시간강사들은 4개월마다 근로계약서를 새롭게 쓴다. 학생들의 방학과 함께 실직자가 되는 것이다. 강의 중에도 건강보험이 보장되지 않아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는 이가 많다. 정규직 교수가 아니면 재직증명서조차 발급되지 않는 곳이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이다.
 
대학뿐 아니라 여러 노동의 공간에 유령들이 존재한다.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자신의 노동을 서류로 증명할 수 없는, 다치거나 죽어도 하청업체의 직원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그러한 숨은 노동자들이 어디에나 있다. 그들의 노동하는 몸은 우리 사회에서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쉽게 지워진다.
 
토론회에서 ‘4차 산업혁명’이나 ‘귀족노조’와 같은 단어가, ‘허허’ 하는 웃음이 공허히 유령처럼 떠도는 동안 노동자들은 한층 더 투명해진 자신의 몸과 마주해야 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그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잠시 소환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끝까지 후보자들을 지켜보았지만 결국 여전히 유령으로 남은 스스로를 아프게 확인했다. 그들은 ‘반값등록금’에 대해서만 서로의 원죄를 묻고 답하는 시간을 잠시 보냈을 뿐 이렇다 할 정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유령들도 투표를 한다. 기표소에서 도장을 찍는 순간만큼은 이 사회의 주체로서 소환되는 것이다. 내가 한 인간으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5월 9일을 기다린다. 내가 투표한 후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그가 자신을 지지해 준 우리 사회의 유령들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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