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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중앙집권적 법원의 제도와 관행 개선해야

중앙일보 2017.05.06 01:34 종합 25면 지면보기
정인진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정인진변호사·법무법인 바른

법원 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이 대법원장의 제도적 인사권이 지나치게 강대하다면서 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 목소리를 잠재우려 한 시도가 불발되고 이어 조직된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이슈는 법관들에 대해 작성돼 있다는 블랙리스트와 오늘날 벌어진 사태의 책임 소재에 관한 또 다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며 판사회의가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장이 독점하는 판사 인사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행사
외국과 비교하면 보편성 없어
법관들 개선 요구에 귀기울여야

법원의 근무평정제도가 정착된 오늘날, 법관의 인사가 일상적 공정성의 차원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수와 서열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법원 인사는 외려 답답한 느낌을 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법관이 인사에 느끼는 불만 내지 불안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의 승진이나 그 이후 기대하게 되는 대법관으로의 승진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른바 ‘잘나가는’ 그룹에 끼기 어려운 법관들이 지닐 수밖에 없는 열패감은 그와 같은 승진에서 어떤 경향성이나 정치적 고려가 보인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 이유나 원인에 대한 의혹과 불만으로 커져 간다.
 
실상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할 권한을 가지거나 대법관 아닌 모든 법관의 임명권을 독점하는 우리의 제도는 외국의 예에서 볼 때 결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다. 법원행정처가 중앙집권적 지위에서 하급심 법원에 대해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는 우리의 법제 역시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공정하게 말해 이 특수한 제도는 국민에 대한 사법 작용의 면에서 보면 상당히 효율적이며 사법 인프라의 경제적 선진성을 높이는 데도 많이 기여해 왔다. 그러나 모든 효율적 제도는 그 안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이 공정하지 못할 경우 재앙을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법관 상당수가 대법원장의 인사권 행사가 썩 공정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아니라면 법관들은 현 대법원장의 취임 이래 보수적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대법원의 사법철학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법원이 제도 개선을 넘어 적정한 인사권 행사에 관해 근본적 인식의 변화 없이 이번 사태를 그저 일과적 소란 정도로 여긴다면 법관들의 불만은 결코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진상조사위는 조사보고서의 결론에서 법원 조직의 수뇌부라고 할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을 지적했다. 또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법원의 공식적 입장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법원행정처가 연구회의 활동에 “민감하게 대응”했거나 “사법제도에 관한 일선 법관들의 관심과 논의 및 의견수렴 요구를 외면하거나 제한”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법원행정처가 법관의 재판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넘어 일면에서 재판 사무에 관해서도 법관들을 통제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법관의 독립은 전통적으로 정치권력이나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돼 있지만, 여기에는 법원 내부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요청도 있다. 사법행정에 의한 재판 작용의 통제는 일면 효율성과 적정성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법원 수뇌부로서는 사법정책상의 목표 달성을 위해 그런 통제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사법철학을 획일화하거나 법관들을 계급적·행정적 질서 속에 배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큰 문제다.
 
양형의 권고적 기준 설정을 넘어 구체적 사건에서 기준 준수 여부를 감시당한다는 의심이 들도록 각종 행정적 통제를 의도하거나, 항소심에서의 심리 방식에 대해 사실상의 일률적 기준을 세우려 들거나, 상급심이 하급심 판결에 대한 상소를 기각하는 비율에 어떤 목표치를 설정하는 따위의 일은 국외자가 목도하기에도 매우 염려스럽다. 일전에 발표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대하는 판결을 하면 인사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믿는 법관들의 응답수가 88%에 이르거나, 법관의 독립을 위해 사법행정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법관들이 97%의 비율을 보인 사실은 아주 위험한 징표다. 여기에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독점하는 제도가 겹쳐 있는 현실에서 과연 법관의 내부적 독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판단을 기우라고만 할 것인가. 진상보고서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이에 관한 조사가 만족할 만큼 됐는지도 의심스럽다.
 
사법부가 제 길을 가지 못하면 그것을 고치겠다고 외부의 손이 다가오는 법이다. ‘정의는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법언은 아무리 곱씹어도 의미심장하다. 어느 조직에서나 의혹은 함부로 다룰 것이 아니다. 의혹에 싸여 있다가 끝내 몰락을 맞은 공직자나 그가 속한 조직의 공통된 문제는 관련 당사자를 포함한 일반 국민의 인식이 이미 높아져 있는데도 이것을 턱없이 낮추어 본 것이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대법원의 근본적 인식 전환을 기대한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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