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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의 시시각각] 가짜뉴스는 내 안에 숨어 있다

중앙일보 2017.05.06 01:32 종합 26면 지면보기
홍승일 논설위원

홍승일 논설위원

아니나 다를까,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접어든 3일부터 네거티브가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문재인 후보와 세월호 인양 지연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한 지상파 방송의 보도가 그것이다. 지지율 수치를 가린 깜깜이 대선 초반, 이 보도는 그러잖아도 답답해하던 선거 정국에 기름을 부었다. 통상 경합후보 진영에서 폭로가 터져 나온 것과 달리 이번엔 버젓한 방송의 특종 보도가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이 방송사는 무려 5분30초의 사과방송을 내보내 진화에 나섰지만 불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는다. 2위권에서 치고 올라가려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해당 방송사가 당초 보도를 부랴부랴 철회한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유력 대선후보의 눈치를 보는 방송국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극언까지 했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본성
대선 기사 일단 의심해 보시길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탈진실((脫眞實·Post-truth)’의 전형이다.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의 신념·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다. 문 후보와 세월호 인양 사이에 연관성이 팩트인지를 가리는 것이 우선일 텐데 일단 이 테마가 정치공세의 소재가 되어버리는 정치권 생리가 그것이다.
 
탈진실 사회의 특징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가 일찍이 60여 년 전 미스터리 심리극 ‘라쇼몽(羅生門)’에서 설파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산중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당사자·목격자 입장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하는지 생생히 묘사하면서 한 필부의 대사에 이를 집약했다. “사람은 나쁜 걸 잊고 싶어 하지요. 대신 꾸며낸 좋은 것만 믿으려 합니다.”
 
가짜뉴스는 물리적으로 단속·처벌·규제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선 디지털 공간에서의 가짜뉴스 전파량이 엄청나 통제 불능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 때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한 기사 5건 중 4건이 가짜로 드러났다.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든가 ‘클린턴 후보,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팔았다’ 같은 기사였다. 가짜뉴스 만드는 수법 또한 날로 교묘해진다. ‘악마의 편집’을 거친 스토리는 문장이나 그래픽·디자인의 완성도 면에서 세련된 일류 언론 기사 뺨친다. 가짜가 10~20% 정도 섞인 순도 8~9할짜리 스토리는 진짜 기사와 구분도 잘 안 된다.
 
이런 것들이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채팅방을 숙주 삼아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간다. 독자를 낚아 클릭을 올리면 될 뿐 누가 썼는지, 원전이 어디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뉴스를 공유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더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미디어 인사이트 조사, 2016년). 끼리끼리 세계에 갖히는 필터버블(Filter Bubble) 현상이다. 촛불·태극기 시위대의 일부,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랬다. 유유상종이 심하면 반향실(Echo Chamber) 증세가 생긴다. 이는 구성원들을 가짜뉴스에 취약하게 만든다.
 
가짜뉴스는 평판의 시장, 공론의 광장에서 거르는 것이 시장원리에 맞는다. 하지만 피해자가 그동안 망가질 대로 망가진다는 점이 안타깝다. 미국 폴리티팩트, 프랑스 크로스체크, 서울대의 ‘SNU 팩트체크’ 같은 가짜뉴스 방지 시스템이 제 몫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발의한 ‘가짜뉴스 청소법’도 취지는 좋지만 비판의 자유를 저해한다는 논란이 있다.
 
그래서 요즘 일부 포털을 중심으로 ‘진짜뉴스’ 라벨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팩트보다 팩트체크의 인기가 치솟을 판이다. 초년기자 시절부터 눈물 날 정도의 미담기사나 욕 나오게 만드는 악행 기사 모두 일단 의심해 보자는 원칙을 지켜 왔다. 세상에 100% 착한 사람, 100% 악한 사람은 없다. 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깜깜이 대선이 끝나는 9일까지만이라도 튄다 싶은 선거기사를 접하면 일단 가짜뉴스인지 의심해 보시라고 권한다. 탈진실의 시대, 가짜뉴스는 외부가 아닌 내 마음 안에 도사리고 있다. 
 
홍승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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