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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조현병 환자의 살인은 국가의 책임이다

중앙일보 2017.05.06 01:31 종합 27면 지면보기
신의진연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 회장

신의진연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 회장

최근 8세 여아를 유괴,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10대 소녀가 조현병의 치료경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많이 유발한다는 오해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검찰청의 통계에 따르면 살인범죄자 중 정신장애를 앓는 경우는 7.9% 정도다. 다만 최근 정신질환자들의 잇따른 살인 범죄에 뚜렷한 예방 대책이 없다 보니 사회 불안이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도 조현병 환자들의 강력범죄에 대해 기존의 정신건강 관리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현병의 증상 때문이 아니라
치료와 관리의 부재 때문
가족 대신 국가가 관리하고
병원과 학교 시스템 정비해야

첫째, 최근의 동춘동 살해 사건, 지난해 강남역 인근의 살인은 조현병 환자들에 의한 범죄였다. 조현병은 망상과 환각 증상이 있어 현실적 판단력이 저해되므로 자해 및 타해 가능성이 높다. 대개 10대 말에서 20대에 첫 발병을 하게 된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초기 증상이 나타날 때 입원치료, 약물치료, 심리치료, 가족치료 등 필요한 조치를 집중적으로 투입하면 개인도 건강해지고, 사회도 안전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난감하다. 우선 청소년들이 급성 정신병적 증상을 보일 때 제대로 보호, 치료할 수 있는 소아청소년 전용 정신과 입원실은 거의 없다. 그래서 어른 병동에서 함께 지내야 하니 입원에 대한 부모나 청소년들의 거부감이 크고, 입원 시에도 청소년기에 적합한 환경치료를 못하게 된다. 대학병원조차 낮은 입원수가로 인해 소아청소년 전용 병동 유지를 기피하며, 퇴원 후 심리사회적 치료 역시 필요한 만큼의 치료수가와 외래치료 공간이 없어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기 힘들다. 겨우 약물치료로 증상 완화를 하며 버티다 상태가 악화되면 자의로 치료를 중단하는 비율이 높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가족들도 지치게 되고 상당수가 방치되다가 사고가 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우리 청소년들이 초기 진단·치료가 가능한 정신장애로 인해 고통 받고 범죄에까지 연루되는 상황은 어떻게 막아야 할까. 최근 동춘동 10대 소녀의 범죄 행위를 과연 조현병 증상 관리만으로 막을 수 있었을지 전문가들이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의학적으로 보면 조현병 환자의 일부만이 공격 성향, 반사회적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환자들은 일반 조현병 환자와는 다르게 공격 성향에 대한 세분화된 평가, 심리사회적 치료, 생물학적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문가들과 논의해 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일반 조현병 환자처럼 약물 위주의 병원 치료나 정신보건센터에서 만성 정신질환자를 위한 정신재활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것으로는 공격 성향을 제대로 치료, 관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조현병 이외의 다른 정신과 질환이 동반되는지, 나이에 따라 변화무쌍한 청소년기 정신병리를 정확히 진단해 내려면 제대로 된 임상 실력을 갖춰야 한다. 수련을 받는 전공의 시절 동안 소아청소년기 정신질환에 대해 임상적·이론적 교육 경험을 일정 수준 이상 포함시키고 흔한 정신질환에 대한 공존 정신병리에 대해서도 철저히 진단, 관리하는 전문성을 함양해야 할 것이다.
 
결국 폭력적 성향이 많은 청소년, 청년 정신질환자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무고한 약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기존에 없는 새로운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먼저 법무부·보건복지부가 협력해 범죄 성향이 높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모델을 연구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한국 실정에 맞는 치료 관리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기부터 공격적 행동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하는 건강관리 시스템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부는 청소년기 정신장애를 앓는 학생들이 치료 이후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거주형 소아청소년 병원학교(Residential Hospital)를 만들어 급성기를 지나 치료와 일상생활 적응 훈련,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진·특수교사·각종 치료사들을 두어 정신질환 치료와 재활이 가능한 사회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자녀가 폭력 성향이 있는 정신질환을 앓게 되면 가족이 그 책임을 모두 떠안게 된다. 약물치료 위주의 정신과 치료로 호전되면 다행이지만 더 전문적인 폭력성향 감소를 위한 심리사회적 치료, 학교 적응을 위한 특수 교육을 제때 받지 못한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다. 병의 재발과 사회적 고립은 결국 개인과 그 가족의 불행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의 안전을 위협해 우리 모두를 불안에 떨게 하니, 그 사회적 비용이 참으로 크다.
 
대선을 앞두고 굵직한 공약은 많이 나오지만, 정작 개인의 기본적 건강과 행복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하는 우리 청소년, 청년들의 정신건강 관리시스템에 관심을 갖는 정책 공약은 없다. 10대 소녀가 8세 어린이를 살해하는 이 상황에서 과연 정치권과 정부는 민생을 위해 일을 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신의진 연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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