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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아이들 상상력이 나라의 보물 … 50년간 2500명 그림 지도

중앙일보 2017.05.06 01:00 종합 14면 지면보기
‘어린이 그림과 함께한 반세기’ 서양화가 김정 
김정 화백의 트레이드 마크는 30년 넘게 길러온 턱수염이다. 어린이와 함께해 온 할아버지의 인자한 마음씨를 닮았다. 수염 덕분에 2008년 신한카드 공익광고 모델로 뽑히기도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정 화백의 트레이드 마크는 30년 넘게 길러온 턱수염이다. 어린이와 함께해 온 할아버지의 인자한 마음씨를 닮았다. 수염 덕분에 2008년 신한카드 공익광고 모델로 뽑히기도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깔끔하게 묘사된 화병을 보니 꽃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네요. 나이에 비해 그림이 잘 정돈됐지만 다음엔 좀 더 대담하게 그려 봐도 좋겠습니다’. 어린이 월간지 『소년』(가톨릭출판사) 2017년 5월호 ‘무지개동산’ 코너에 실린 그림평이다. 벌써 569회째다. 원로 서양화가 김정(77·전 숭의여대 교수) 화백이 인천부내초등 3학년 김민지 학생의 ‘우리 집 시클라멘’에 친절한 설명을 붙였다. 인천구산초등 3학년 장재희 어린이의 ‘맛있는 저녁’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식탁 부분에) 사진을 더해 실제 식사처럼 실감 나네요. 다만 그림 위 말풍선 때문에 만화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다소 아쉽기도 합니다’.
 

68년부터 월간 『소년』서 그림 촌평
판에 박힌 붕어빵 교육 미래 없어
손끝 재주보다 창의력을 높게 평가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재능 기부도

미술교육 논문 27편, 연구서 11종
아이들 건강해야 외국과 경쟁 가능
우리 정서에 맞는 미술교수법 찾아
85년엔 한국조형교육학회도 창립

민초의 숨결 ‘아리랑 그림’ 600여 점
정선·진도·밀양 등 방방곡곡 스케치
굽고 휘어도 자라는 소나무에 빠져
아리랑과 아이가 인생 전부이자 꿈

아이들 그림에 촌평 달기,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이다. 그런데 50년째라면 말이 달라진다. 김 화백은 『소년』 1968년 8월호부터 전국 아이들과 함께 호흡해 왔다.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지금까지 거쳐 간 아이들이 약 2500명, 50년 전 열 살 꼬마는 이제 환갑 나이가 됐다.
 
“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왔네요. 아이들과의 약속을 절대 끊을 수 없었죠.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애정과 정성을 기울이며 봉사해 왔습니다.”
 
노화백의 눈빛이 환해진다. 턱 밑 가지런한 수염도 빛난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은 하루 종일 봐도 질리지 않아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천진한 모습이죠. 우리 앞날은 아이들이 끌고 갑니다. 정서적 안정이 가장 중요해요. 아이들과 반세기를 함께해 온 건 그런 책임감 때문입니다. 제 나름의 사회 참여인 거죠.”
 
우리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김 화백의 본업은 ‘아리랑 그림’이다. 우리 산하 곳곳에 담긴 민초의 숨결을 고집스럽게 그려 왔다. ‘김정=아리랑’이란 등식이 성립할 정도다. 관련 연작이 600여 점에 이른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지난달 말 찾아간 서울 종암동의 한 아파트, 김 화백의 자택이자 작업실이다. 거실·방마다 50년 화업(畵業)의 자취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는 마침 제31회 서울발달장애인사생대회 심사를 다녀왔다고 했다. “첫 행사부터 재능기부를 해 왔습니다. 지적장애아들이 그림을 통해 커 가는 모습을 보며 저도 인생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죠.”
 
김 화백의 서울 성북구 종암동 자택 작업실 풍경.

김 화백의 서울 성북구 종암동 자택 작업실 풍경.

지난 세월 아이들 그림도 달라졌겠죠.
“80년대까지는 선생님이 칠판에 그려 준 대로 따라 했습니다. ‘해님은 이렇게, 집은 이렇게’ 하며 가르쳐 줬죠.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 교육법이죠. 이후 소득이 높아지고 생각도 자유로워지면서 아이들 그림도 다양해졌습니다. 요즘에는 선생님 흉내를 내지 않아요. 또 그렇게 지도하지도 않고요.”
 
우리 사회 변화상이 투영된 셈이군요.
“어려서 6·25를 겪은 제 세대는 군인을 많이 그렸습니다. 1950~60년대생 아이들의 경우 우리 식구, 우리 동네 등이 단골 주제였죠. 바깥세상을 몰랐던 거죠. 이후 꿈·꽃·여행·과학 등 소재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분위기도 훨씬 밝아졌고요. 아이들 그림도 유럽·미국 등과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아이들 그림은 어떻게 심사합니까.
“쉽지 않아요,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반듯하고 예쁜 그림도 좋지만 저는 한 가지를 더 봅니다. 아이가 무엇을 요구하는가, 생각이 어떤가, 발달상황은 어떤가, 정서적으로 건강한가, 그런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나이에 맞는 그림을 말하나요.
“무엇보다 그림은 즐겁게 그려야 합니다. 아이다워야 한다는 뜻이죠. 꽃봉오리 하나에서도 ‘라라라~’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야단쳐서, 점수를 따기 위해 그린 그림은 신이 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맛이 나지 않죠. 노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술 한 잔 걸치면 절로 어깨춤이 나오잖아요.”
 
김정 화백이 50년째 아이들 그림평을 연재해 오고 있는 월간 『소년』의 ‘무지개동산’ 코너.

김정 화백이 50년째 아이들 그림평을 연재해 오고 있는 월간 『소년』의 ‘무지개동산’ 코너.

‘손끝 재주’ 교육을 비판해 왔습니다.
“그림은 상상력·창의력입니다. 예컨대 독일 교실에선 아이들이 도화지 크기, 그림 재료를 스스로 선택합니다. 비슷비슷한 스케치북·크레파스를 쓰는 우리와 달라요. 우리는 흔히 사물을 빼닮은 그림을 칭찬합니다. 저는 그런 데 진을 빼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그리라고 합니다. ‘왜 이 말(馬)은 실제와 다르니’라고 야단치면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어요.”
 
요즘 아이들 미술학원은 어떤가요.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갔기 때문이죠. 판에 박힌 그림이, 기계적 교육이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꽃밭이든, 야산이든 현장에 가서 아이들의 생각을, 감각을 일깨우려 노력합니다. 우리 미술교육 이론이 튼튼해진 덕분이죠. 붕어빵 교육으론 미래가 없죠. 학부모 수준도 높아졌고요.”
 
그림 창작과 이론 연구를 병행하셨죠.
“저만큼 논문(국제규격 27편)과 연구서(11종)를 많이 낸 화가는 드물 겁니다. 80년대 초반 독일에서 4년간 공부하면서 큰 자극을 받았어요. 유럽·미국·한국의 미술교육을 비교했습니다. 우리 정서에 맞는 방법을 찾고 싶었거든요. 처음에는 ‘화가가 무슨 논문? 그림만 잘 그리면 되지’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습니다. 85년 한국조형교육학회를 창립했죠. 다음달 대구에서 국제학술대회도 열립니다.”
 
왜 정서, 정서를 강조하십니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야 나중에 외국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물건 하나를 외국에 팔려고 해도 외국인의 정서를 알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문화와 경제가 따로인 세상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 뿌리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고요. 그게 제겐 ‘아리랑’ 그림입니다.”
 
50년 동안 한 주제, 물리지 않나요.
“‘아리랑’은 한국인의 토양입니다. 남녀노소를 초월한 감성이죠. 20대 군인 시절 강원도 양구 최전방에서 들은 ‘정선아리랑’에 빠진 이후 진도·영천·문경·밀양·서산 등 방방곡곡을 쉬지 않고 다녔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풍토와 가락에 매료됐어요. 2012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에도 등재됐죠. 지금도 두 달에 한 번은 지방 스케치를 떠납니다. 갈 때마다 새롭습니다.”
 
‘아리랑’과 어린이, 관계가 있나요.
“‘아리랑’에 외곬으로 매달리다 보니 우리 강산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습니다. 굽어도 휘어도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나는 우리 소나무의 미학에도 눈을 뜨게 됐고요. 제 ‘아리랑’ 그림에는 늘 소나무가 들어갑니다. 이 아름다운 곳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 주역은 누구인가, 결국 우리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날’을 맞는 감회가 각별하겠죠.
“한국 아이들은 그림 발달 과정에서도 외국과 다소 차이가 납니다. 7~8세쯤에 속도가 붙습니다. 일본보다 조금 늦고, 미국보다 이른 편이죠. 특히 손재주만큼은 최고죠. 전 세계 어린이 그림 2300여 장을 수집·연구한 결과입니다. ‘아리랑’처럼 우리 핏속에 특별한 운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구텐베르크보다 금속활자를 200년 앞서 만든 나라 아닙니까.”
 
남은 바람, 혹은 계획이라면요.
“제 나이가 몇입니까. 지금까지 해 온 대로 해야죠. ‘아이들에게 미친 화가’라고 자부합니다. 어린이와 ‘아리랑’ 두 가지, 치매가 올 때까지, 눈을 감을 때까지 계속 붙들고 있겠습니다. 그게 노년의 행복입니다. 제 인생 전부이자 꿈이고 실천입니다.”
 
[S BOX] 윤석중 선생의 동화책 표지 그림 전담, 장욱진 화백과 동인회 활동
윤석중(左), 장욱진(右)

윤석중(左), 장욱진(右)

1967년 무렵이다. 청년 김정은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사진 왼쪽) 선생의 새싹회 사무실을 찾았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로 시작하는 ‘어린이날 노래’의 가사를 붙인 바로 그 윤 선생이다. “아이들 그림에 관심이 크다”는 청년의 말에 윤 선생이 “작품을 한번 보자”고 했다. 그리고 미소로 답했다. “자네 그림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간 것 같군.”
 
그게 시작이었다. 이후 청년은 윤 선생의 동화 표지 그림을 도맡았다. 이원수·박홍근·신지식 등 다른 아동문학가도 만나게 됐다. 월간 『새벗』 기자였던 동화작가 최자영씨를 아내로 맞는 계기도 됐다.
 
“평생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어린이문학을 지킨 분입니다. 제가 스승으로 꼽는 이유죠. 타계 몇 해 전 그간 발표한 작품을 10권으로 추려 표지 그림을 부탁하셨는데 결국 5권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김 화백은 또 한 명의 스승을 꼽았다. 꽃과 나무, 아이들을 주로 그린 장욱진(1917~90·사진 오른쪽) 화백이다. 장 화백의 천진한 화풍에 반해 67년부터 동인회 활동을 쭉 함께해 왔다. “한번은 ‘왜 꼬마들 그림을 그리세요’라고 여쭸더니 ‘귀엽잖아’ 딱 한마디만 하셨어요.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정말 순수한 분이셨습니다.”
 
김 화백은 이번에 장욱진 탄생 100년을 기리는 『장욱진 초상 드로잉』(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도 냈다. 그가 스승과 함께 전국 스케치 여행을 다니며 짬짬이 그린 스승의 초상 64점을 기증했다. 사제의 오랜 동행이 꽃보다 아름답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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