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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의 서울이야기] (28) 행복의 함정들

중앙일보 2017.05.06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완전한 행복 꿈꾸는 건 공항서 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
오늘 내 딸이 말했다. 아빠는 있지도 않은 곳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그러면서 얄밉게도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꼭 공항에서 배를 기다리는 사람 같잖아.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짓 즐거움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유혹을 경계하라고 일렀다. 보에티우스는 무지를 방치할 때 우리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잊은 채 귀가를 서두르는 취객과도 같다고 했다. 그렇다. 행복을 추구하는 길은 곧 귀가하는 길과도 같다. 귀갓길 여기저기 온갖 유혹이 도사린다.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육체적 쾌락, 재물, 명성 같은 각종 허상들이 그것이다. 소비 지향의 사회는 행복을 조작할 수 있다는 의식을 만들어냈다. 이런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누구든 자기만의 행복에 혼자 침잠할 수는 없다. 다행히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우리 손을 잡아 이끌 스승이 여럿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눈을 크게 뜰 것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라 가르친다. 충동·허세·좌절·탐욕·트라우마는 스쳐 지나는 풍경의 일부일 뿐. 참다운 평화와 행복이란 그 모두를 관통하는 길에서 끝까지 완주하는 자의 몫이다.
 
상업적인 행복의 허상만이라도 일상에서 걷어내는 것은 어떤가. 허상의 달콤함과 작별하여 진짜 삶에서 도망치는 버릇을 근절해 보지 않겠는가. 티베트 불교의 거승 최걈 트룽파는 이렇게 가르쳤다. 정신적인 위안을 찾아 쇼핑을 하는 것은 에고를 찾아 일부러 고통을 만지작거리는 것과도 같다고. 진정한 삶을 회피하고 에고와 더불어 희희낙락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터무니없는 행동을 불사하는지 모른다.
 
일정량의 고통이 불가피함을 알면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질 수 있다. 투쟁은 언제나 우리를 지치게 하고 거짓 희망이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좀 더 고귀한 일에 쏟아부을 수도 있을 에너지를 훔쳐 달아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영적 가치를 회복하는 일은 자기가 속한 사회와 더불어 발전을 모색하는 일에 직결된다. 니체의 말대로, 우리는 전체성 안에서만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와 상처가 아무리 마음을 괴롭혀도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은 흔들리지 않는 건강이 자리하는 곳. 있는 그대로의 삶은 바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무엇이 아닐까.
 
일상에서 무턱대고 완전한 행복을 꿈꾸는 것은 공항에서 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진정한 희열의 순간을 자꾸만 미루는 어리석은 태도다. 이륙하기 전에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땅을 딛고 걷는 법이며 그것은 자체로 신성한 과업이다. 다시 최걈 트룽파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아직 아무도 깨달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아무도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야말로 우리 영혼의 근본적인 문제다.
 
고통을 근사하게 포장하는 것은 길이 아니다. 반대로 게임의 룰을 터득함으로써 우리는 삶에 보다 근접한 자세, 진짜 가치 있는 투쟁에 몰입할 경쾌한 지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에고가 벌이는 온갖 불편부당함들, 그 사이코 드라마와 싸우며 살아남는 행복의 지혜 말이다. 
 
스위스 철학자/번역 성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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