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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OECD 보고서에 도전장 내민 이대·숙대의 실험

중앙일보 2017.05.06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공학도 양성 나선 여대들 
‘화성에서 온 과학·기술자, 금성에서 온 의료인.’
 

여학생, 공대 불리하다 여겨 외면
여성 공학도 18%, 의약계열은 61%
OECD “남녀의 직업 고정관념 여전”

여대에 금녀의 영역 기계학부 등장
숙대, 기계시스템·전자공학부 신설
이대, 휴먼기계바이오공학부 생겨

교육부, 여성 공학인재 양성 사업
10개 대학에 3년간 총 150억 지원
여성 공학도들의 창업·취업 돕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 제목이다. 미국 작가 존 그레이의 베스트셀러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제목을 본뜬 이 보고서는 성별에 따른 이공계 희망 직업 차이를 분석한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OECD 회원국 15세 학생들의 진로 희망을 조사해 보니 이공계 직업을 갖고 싶은 학생은 남녀 모두 4명 중 1명꼴로 비슷했지만 세부 분야별로 보면 차이가 컸다. 과학·기술 전문가를 희망하는 남학생(12.2%)이 여학생(5.3%)보다 월등히 많은 반면 건강·의료 전문가는 남학생(5.9%)보다 여학생(17.4%)이 훨씬 많이 희망했다.
 
올해 신설된 숙명여대 기계시스템공학부 학생들이 기계 프로그래밍 수업을 받고 있다. 여대 가운데 기계공학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 학과가 최초다. [남윤서 기자]

올해 신설된 숙명여대 기계시스템공학부 학생들이 기계 프로그래밍 수업을 받고 있다. 여대 가운데 기계공학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 학과가 최초다. [남윤서 기자]

◆여학생 공대보다 의대 선호=OECD는 “지난 세기 동안 남녀에게 주어진 기회는 평등해졌지만 여전히 직업 선택에서는 장애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그 원인으로 ‘문화적 영향’에 주목했다. 대부분 문화권의 대중매체 등에서 과학자나 컴퓨터 전문가는 ‘흰 가운을 걸친 남자’로 묘사되고, 이런 고정관념이 가정과 학교 교육에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수년 전부터 ‘인구론’(인문계 90%는 논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이공계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한국은 어떨까. 예전보다 이공계(공학·자연과학·의약학)에 진학하는 여학생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세부 계열별로 성비(性比)는 큰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4년제 대학 공학계열은 여학생이 17.6%에 불과했지만 의약계열(의학·약학·간호 등)은 61.3%에 달했다.
 
문제는 이런 차이가 10년 전인 2006년보다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10년 새 공학계열 여학생 비율은 4.9%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의약계열은 10%포인트가 늘었다. 특히 공학계열 중 기계금속이나 전기전자 등의 분야는 여학생 비율이 거의 늘지 않았다. 반면 의약계열은 간호학에서 여학생 비율이 크게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의·치·한의학)와 약학에서 여학생이 더 많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가 단지 문화적 영향일 뿐 아니라 여성 공학도가 맞닥뜨리는 취업과 근로 여건 등 현실적 어려움이 반영된 선택으로 해석한다. 백광진(의학부 교수) 중앙대 입학처장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었던 간호학에서 최근 남학생 비율이 늘어나는 이유는 남성 간호사가 취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학생이 계속해서 공학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남학생에 비해 불리하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여성 공학도 키우려는 대학들=하지만 최근 대학에서는 성별로 고착화된 전공의 틀을 깨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숙명여대는 지난해 처음으로 공대를 설립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기계시스템공학부, 전자공학전공 등의 학부·과를 신설했다. 이화여대도 올해 기계공학이 포함된 휴먼기계바이오공학부를 신설했다. 여학생 비율이 6.8%(2016년 기준)에 불과해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통하던 기계공학전공이 처음으로 두 여대에 동시에 등장한 것이다.
 
숙명여대 기계시스템공학부 1학년 50명은 물리학, 수학,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을 받으며 공학도의 첫발을 내디뎠다. 1학년 진아현(19)씨는 “지금은 기계가 없는 곳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새로운 세계다. 로봇을 움직이는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다는데 기대된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 권민지(18)씨는 “주위 친구들은 ‘수학은 결국 남자들이 더 잘하게 된다’며 이과를 피했지만 연구원이 되기 위해 공대에 왔다”고 말한다. 권씨는 “편견만 없다면 기계공학을 여성이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신지영 숙명여대 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무조건 여성 공학도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성비는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어 균형적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공학이 남성의 영역이라는 편견이 남성 중심의 공대 분위기를 만들고, 이것이 남성 중심의 이공계 기업 문화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고리를 깨려면 출발 단계부터 여성 공학도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남성적 공대 체질 바꿔야=교육부도 지난해 9월 여성 공대생을 지원하기 위한 ‘여성 공학인재 양성 사업(WE-UP)’을 시작했다. 10개 대학을 선정해 대학마다 연간 5억원씩 3년간 총 150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각 대학은 교육과정을 여성 친화적으로 바꾸고 여성 공학도의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데 지원금을 사용하게 된다.
 
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한양대는 공대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2학기부터는 여성 친화적인 6개 강의를 정규 과목으로 개설할 예정이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공학자를 초빙해 멘토링 강의를 하거나 선배 여성 공학인이 참여하는 취업·창업 상담도 진행한다. 최근에는 공대 건물 안에 여학생이 휴식을 취하거나 토론·과제를 할 수 있는 ‘여성 엔지니어 라운지’도 만들었다.
 
윤채옥 한양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남성적인 공대 문화에서 여학생은 소외되기 쉽다. 여학생이 대학뿐 아니라 사회에 진출해서도 소외되지 않도록 탄탄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S BOX] 올해 간호사 국시 합격자, 남성이 첫 10% 돌파
올해 간호사 국가시험에서는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간호사 자격을 얻은 합격자 1만9473명 가운데 남성이 2134명(11%)으로 처음 10%대를 돌파한 것이다. 간호사 국시의 남성 합격자 비율은 2004년 이전까지는 채 1%도 되지 않았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 거세질 전망이다. 4년제 대학 간호학과 재학생 중 남성 비율이 2006년 4.3%에서 2016년 18.4%로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청년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취업이 잘되는 간호직에 대한 남학생의 선호도가 높아지자 ‘나이팅게일’로 대표되는 간호사의 여성적 이미지도 바뀌고 있다.
 
이처럼 대학에서 여학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던 ‘금남(禁男)의 영역’이 무너지는 사례는 음악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10년 전 남성 비율이 25%였던 작곡과는 35%로 늘었고, 음악학과도 남성이 24%에서 33%로 늘었다. 초등교육학, 식품영양학, 사회복지학 등 전통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은 전공들도 남학생이 꾸준히 많아지면서 10년 새 8~10%포인트 늘었다.
 
반대로 남성 비율이 높았지만 10년 새 여성이 더 많아진 전공도 있다. 치의학은 10년 전 35%이던 여성 비율이 지난해 75.6%로 늘었다. 광고홍보, 언론, 사진·만화 등의 전공도 여성이 매년 늘어 50%를 돌파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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