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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연구개발비 일주일에 102억 “제품 완벽하기 전엔 안 내놔”

중앙일보 2017.05.06 01:00 종합 17면 지면보기
다이슨의 동남아 전자연구개발 책임자 루버스
지난 4월 13일 서울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열린 다이슨 공기청정 선풍기 출시 행사에서 짐 루버스 총괄이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다이슨]

지난 4월 13일 서울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열린 다이슨 공기청정 선풍기 출시 행사에서 짐 루버스 총괄이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다이슨]

다이슨. 날개없는 선풍기로 유명한 이 회사는 통념을 깨는 제품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선풍기뿐 아니라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와 모터를 숨긴 소음 없는 헤어드라이어 등 기술집약적 제품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전 세계적으로 혁신기업 이미지를 키워나가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내놓은 헤어드라이어는 국내에서 소비자가 55만원에 책정, 일반 헤어드라이어의 10배가 넘는 값에 팔리지만 소비자들은 가격에 아랑곳없이 다이슨이라는 브랜드를 믿고 선택한다. 남다른 기술력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셈이다.

엔지니어가 전체 직원의 3분의 1
전 세계에 특허 8000여 개 출원
히트 친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15년간 시제품 5000개 만든 후 시판
“제품 기능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디자인 따라와”

 
숫자로도 증명된다. 다이슨의 2016년 매출은 전년 대비 45% 증가한 25억 파운드(약 3조6200억원)로, 지난 4년간 수익은 두 배 이상 성장했다.
 
다이슨 무선 진공청소기 V8 플러피.

다이슨 무선 진공청소기 V8 플러피.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여기엔 다이슨의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가 바탕이 됐다. 스스로를 기술 기업(technology company)으로 부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다이슨은 일주일에 70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무려 102억원을 오로지 연구개발에 쏟아붓는다. 전 직원의 3분의 1인 3000여 명이 엔지니어이고, 전 세계에 출원된 특허 수는 8000여 개, 현재 R&D 부서에서 연구하는 신기술 프로젝트만 200개가 넘는다. 아무나 만드는 선풍기나 청소기·헤어드라이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는 건 대체 무슨 까닭일까. 지난해 11월 시장에 내놓은 공기청정기 관련 행사차 최근 방한한 다이슨 동남아시아 전자연구개발 총괄 책임자 짐 루버스(Jim Roovers·43)를 만나 궁금증을 캐물었다.
 
루버스 총괄은 “다이슨 공기청정 선풍기는 0.1㎛(1㎛는 백만 분의 1m) 크기 초미세먼지를 99.95% 정화하는 제품으로 필터를 200번 접어 만들어 작고 슬림하다”며 “이 제품은 3년 전부터 개발에 들어가 400여 개의 시제품을 만든 끝에 출시했다”고 말했다.
 
초당 최대 200L 공기를 유입한 후 최소 6배로 증폭시켜 깨끗한 공기가 공간 전체에 골고루 분사되도록 할 뿐 아니라 온도 조절 장치를 통해 원하는 온도로 유지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공기청정기와 선풍기·냉온풍기의 기능을 합한 것이다.
 
다이슨 헤어드라이어 슈퍼소닉.

다이슨 헤어드라이어 슈퍼소닉.

루버스 총괄은 “많은 회사들이 출시 일을 정해놓은 후 그 마감시한이 되면 제품의 완성도가 충분치 않아도 일단 시장에 내고 나중에 수정한다”며 “하지만 다이슨은 처음 목표로 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보니 제품 출시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이슨을 지금의 독보적 위치로 올려준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1993년 첫 출시)는 개발에만 15년이 걸렸다. 그 긴 시간 동안 5000여 개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기업에 시간은 곧 비용이다. 모든 회사가 연구개발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못하는 건 비용이라는 현실적 이유 탓이 크다. 그런데 다이슨은 어떻게 그 장벽을 넘었을까. 루버스 총괄은 “‘이 정도면 됐지’라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며 “완벽한 걸 추구한다는 건 많은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엔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완벽하기 전에는 세상에 내놓지 않겠다는 다이슨만의 기업 철학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다이슨 창업자이자 현재 수석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제임스 다이슨의 철학이자 고집이기도 하다. 루버스 총괄은 “이번 공기청정 선풍기에도 제임스 다이슨 수석 엔지니어의 고집이 반영돼 있다”며 “그중 하나가 날개 부분과 모터 부분의 이음새 부분이 도드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부품을 이으면 어쩔 수 없이 이음새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디자인에 그만큼 신경 쓴다는 얘기일까.
 
실제로 다이슨은 기술력뿐 아니라 디자인으로도 주목받는 기업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다이슨을 애플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디자인 중심 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버스 총괄은 “다이슨은 디자인 중심 기업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기능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디자인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다이슨의 유명한 진공청소기를 예로 들자면, 먼지통을 투명하게 만든 건 디자인적으로 보기 좋아서가 아니라 제품의 작동 기술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루버스 총괄은 “처음부터 디자인을 염두에 두기보다 기술 집약적인 다이슨의 면모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다이슨의 기술 중심주의에는 회사 중심에 엔지니어가 있다는 점과 자연스레 이어진다.
 
루버스 총괄은 “어떤 회사는 마케팅 전략을 더 중요하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다이슨은 무슨 문제든 기술적으로 접근해 해결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루버스 총괄은 현재 다이슨의 싱가포르 테크놀로지 센터 소속이다. 올 2월 4785억원을 투자해 문을 연 다이슨의 새로운 테크놀로지 센터로, 배터리 셀과 인공지능·머신러닝 등 미래 기술 분야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루버스 총괄은 “다이슨은 배터리 관련 기술 업체를 인수한 후 연 10억 파운드를 이 분야 기술 개발에만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며 “조만간 아주 새로운 제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S BOX] 영국 본사가 캠퍼스 역할 … 기술학교 세워 9월부터 엔지니어 양성
다이슨의 기술 중심 행보는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와 엔지니어 양성 두 갈래로 이어지고 있다. 다이슨 본사는 영국 월트셔 맘스베리에 있다.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라 2016년 9월 2억5000만 파운드(약 3625억원)를 투자해 세운 테크놀로지 센터로, 30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연구개발(R&D) 센터인 ‘연구동 D9’에서는 다이슨 제품에 쓰이는 모터와 소프트웨어, 에너지 저장시설, 로봇 등의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구글의 구글 캠퍼스처럼 다이슨 맘스베리 테크놀로지 센터 역시 ‘맘스베리 캠퍼스’라고도 불린다. 올 9월부터는 정말로 ‘캠퍼스’ 역할까지 하게 된다.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첫 학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원은 한 학년에 단 25명. 여기를 졸업하면 다른 대학 졸업장과 똑같이 공학사 학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영국 워릭대학과 함께 교육 과정을 개발했다. 1~2학년 때는 과학기술 기초를, 3~4학년에서는 구체적인 기계적·기술적 내용을 배운다. 학비는 없다. 오히려 급여를 받으며 공부한다. 또 4년간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연봉까지 더 올려 받을 수 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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