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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척자 정신으로 한국경제를 견인

중앙일보 1987.11.20 00:00 종합 3면 지면보기
우리 기업사에서 삼성그룹의 이병철회장만큼 크고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기업인은 없을 것이다.

해방이후의 궁핍했던 시절에서 60∼7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거쳐 80년대의 국제화 시대에 이르는 도정에서 이회장은 언제나 자유기업주의의 기수로서, 창업과 성공의 상징으로서, 그리고 앞서가는 경영인으로서 이 나라 민간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탁월한 선견력에 치밀한 준비|끊임없이 도전하며 전력투구

기업의 부심이 무상한 우리 나라에서 지난 50년간 사업의 길을 걸어오며 재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거목이었다.

그가 손대는 사업은 언제나 이 나라 제일의 기업으로 자리를 굳혔고, 그의 손을 거친 물건만큼은 믿을 수 있다는 신화를 창조해냈다.

동란 와중의 산업 불모지에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일으켜 근대산업의 첫 장을 열었으며 60년대에 연산 33만t규모의 한국비료공장을 세웠다. 70년대의 고도성장기에는 기계·석유·전자 등 중화학공업으로 수출에 앞장섰고, 지금은 반도체·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으로 국제경쟁사회에서 기술한국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 같은 끊임없는 기업 확장과 새로운 도전을 통해 그가 이끈 삼성그룹는 현재 37개 기업을 거느리는 기업군단으로 성장, 연간 13조7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회장을 세상이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 같은 그의 가시적 업적과 성공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50년에 걸쳐 한결같이 기업인의 외길을 걸으면서 보여준 사업보국의 숭고한 기업이념과 언제나 한 걸음 앞서가는 경영능력,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와 기업경영에 있어 무한추구의 집념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79년 미국의 뱁슨대학이 이회장에게 최고경영자상을 수여할 때 이 대학의 「소렌슨」총장은 이렇게 이회장의 공적을 찬양했다.

『이회장이 새로운 사업을 일으킨 것은 항상 그 사업의 시장성이 가장 낮은 수준에 있을 때였고 극히 곤란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였다. 끊임없는 파이어니어 정신으로 성취한 여러 사업의 업적은 사회에 대한봉사, 바로 그것이었다』

「소렌슨」총장이 지적했듯이 이회장이 기업가로서 남다르게 간직한 것은 바로 사업을 통한 봉사의 정신, 즉 사업보국의 이념이었다 할 수 있다.

이회장은 그의 회고록 『호암자전』에서 『사업을 통하여 경제와 사회를 번영시킴으로써 국가나 민족에 봉사하려는 일념밖에 없었다』고 자신의 사업이념을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정신에서 그는 기업을 부실화시키는 기업인을 최대의 죄인으로 질책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회장은 기업인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고치는데 무척 고심했다.

87년1월 중앙일본에 기고한『부국론』에서 그는 「레이건」미국대통령이 기업가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새로운 부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찬양한 것을 소개하면서 『기업가를 이처럼 영웅시하는 칭찬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올바른 이해와 정당한 평가만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고 술회했다.

스스로 「사업을 통한 봉사를 천부의 사명」으로 알았던 이회장이 부실기업을 만드는 것을 최대의 죄악으로 인식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기업에 그야말로 전심전력을 바쳤다.

끊임없는 탐구·개척정신으로 항상 새로운 일에 도전, 새 지평을 열었다.

86년1월 당시 일본경단련회장이던 「이나야마」(도산가관)씨와의 TV대담에서 이회장은『본인이 연말연시를 동경에서 보내는 것은 동경에 세계 최신정보가 집결되고 각분야의 세계적 석학·정치인·경제인들과 대화하면서 미래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뜻 있고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희수(77세)의 고령과 투병생활 중에도 초인적 정신력으로 이회장은 시야를 세계에 두고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섭취하려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여기에서 삼성이 시대를 앞서가며 기업 변신을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을 찾을 수 있다.

이회장은 또 중요한 일은 직접 메모해두고 일 처리를 하면서 일일이 확인하는 노력가였다. 그렇다고 작은 일에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아니고 경영상 중요한 원칙과 인사의 대본만을 챙겼다.

이회장은 기업경영에서 사람을 가장 중시, 사원의 공개채용제도를 가장 먼저 실천하고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했다.

우리나라기업에 있어 현대경영 기법을 가장 앞서 도입하고 개화시켰다.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되 핵심을 놓치지 않는데서 이회장의 독특한 경영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치밀한 사전준비와 전력투구하는 경영자세로 방대한 삼성그룹을 한치의 틈도 없이 이끌었다. 그리고 그 같은 경영 스타일을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언제나 메모를 해가며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남다른 노력이었다.

얼마 전 일경비즈니스지와의 회견에서 『밑의 사람들이 이회장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고 그는 『내가 거만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해서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기 때문이다』고 대답했다.

이회장은 『부국론』에서 태평양·아시아시대의 도래를 예언하면서 우리가 가야할 부국의 길을 제시하는 경륜을 피력한 바도 있다. <신성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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