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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 좌파 ‘부패’ 우파 동반 몰락, 마크롱 우세 속 르펜 눈부신 추격

중앙선데이 2017.04.30 01:50
[글로벌 뉴스토리아] 5월 7일 결선 앞둔 프랑스 대선
오는 5월 7일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 예선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왼쪽)과 극우 마린 르펜이 맞붙는다. 좌우파가 동반 몰락한 가운데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선 마크롱의 승리가 예측되는 가운데 르펜의 약진도 눈부시다. [AP?신화 =뉴시스]

오는 5월 7일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 예선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왼쪽)과 극우 마린 르펜이 맞붙는다. 좌우파가 동반 몰락한 가운데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선 마크롱의 승리가 예측되는 가운데 르펜의 약진도 눈부시다. [AP?신화 =뉴시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날이 시퍼런 단두대만 없을 뿐 프랑스는 지금 다시 혁명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오는 5월 7일 치러질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누가 당선해도 혁명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대선 1차 투표에서 오랫동안 번갈아 집권하며 이 나라 정치를 이끌었던 우파와 좌파가 동반 몰락한 것 자체가 이미 앙시앵레짐(구체제)을 허무는 격변이었다. 실패한 프랑스 좌우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 표출이다.
 
정치를 기득권자들에게 맡겨 놓을 수 없다
1차 투표에선 중도를 표방한 에마뉘엘 마크롱(40)이 24.01%,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49)이 21.30%를 각각 얻어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우파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63) 전 총리가 20.01%로, 극좌 장뤼크 멜랑숑(66)이 19.58%로 각각 3, 4위로 탈락했다. 놀라운 것은 집권당인 좌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49) 전 교육장관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6.36%의 지지율로 5위에 그쳤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기성 정치권이 ‘좌우 막론’ ‘동반 몰락’의 참화를 당했다.
 
좌파의 몰락은 2012년 집권한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정권의 무능함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으로 풀이된다. 반기업 정책으로 경제 사정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으며 실업률은 두 자릿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동개혁을 시도했지만, 집토끼인 좌파 표만 잃었을 뿐이다. 테러와 사회 혼란에도 인권문제 때문에 과감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좌파의 우등생’이던 올랑드의 지지율은 기록적인 4% 수준까지 떨어져 코미디 소재가 됐다. 우파인 피용은 가족을 보좌관으로 허위 취업시켜 급여를 빼먹는 등 부패와 편법 스캔들로 바람잘 날이 없었다. 좌파의 무능과 우파의 부패는 기성 정치권에서 아웃사이더로 통했던 마크롱과 르펜이 국민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국민의 분노가 바꿔놓은 프랑스 정치 지형도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분노한 유권자들이 생각보다 현명하게 투표했다는 점이다. 인물이 잘나도, 경력이 화려해도, 정책이 마음에 들어도 유권자들은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아무리 잘난 인물이라도 나를 위해 정치를 할 것 같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고개를 돌렸다. 학력이나 경력이 화려할수록 높은 자리에서 어떤 부패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의심이 간다. 정책이 그럴싸해도 알고 보면 그게 다 내 세금을 거둬서 선심 쓰는 것이라는 생각에 혹하는 유권자가 별로 없다. 인물·경력·이념·정책이 다 그럴싸한 피용·멜랑숑·아몽이 모두 탈락한 이유다.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인이 아닌 사람, 그들과 말과 생각이 달라 앞으로 행동도 다르게 할 것 같아 보이는 후보를 더 선호했다. 지금의 이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권을 쟁기로 밭을 갈아엎듯이 확 뒤집고 싶어하는 유권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선거였다. 국민은 신뢰와 변화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었다. 방법은 개의치 않았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정치는 너무도 중요한 일이라서 정치인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는 ‘전쟁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어서 군인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La guerre! C’est une chose trop grave pour la confier a des militaires)’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의 말을 살짝 비튼 것이다.)
 
극좌 지지자 23%가 결선에선 극우 지지로  
1차 투표 직후 우파 피용과 좌파 아몽은 물론 좌파인 올랑드 대통령까지 이미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좌우가 손잡고 극우세력의 집권을 막자는 뜻이다. 다만 극우 멜랑숑은 르펜에는 반대하지만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기성 좌우 정치인의 이런 행동이 과연 이번 선거에서도 유권자에게 영향을 끼치느냐다. 2017년 프랑스 유권자들은 자신이 1차 투표에서 찍었던 후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도 않는다.
 
이를 잘 드러내는 것이 1차 투표 탈락자 지지표의 향배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엘라베는 좌파 아몽 지지자의 93%, 극좌 멜랑숑 지지자의 77%, 우파 피용 지지자의 63%가 마크롱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독특한 것은 좌우를 넘나드는 극단주의 지지파다. 우파 피용 지지자의 37%가 결선투표에서 르펜으로 돌아서겠다고 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좌 멜랑숑 지지자의 23%가 르펜을 찍겠다고 했다는 사실은 이번 대선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좌파 아몽 지지자의 7%도 결선에선 극좌 르펜을 지지할 뜻을 밝혔다. 극좌와 극우를 마구 오가는 유권자의 심리는 기존의 정치분석으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유권자가 좌파와 우파로 나뉘고 이들이 충실하게 자파 후보를 지지하다 극단주의가 나타나면 힘을 합쳐 이를 막으려고 시도하던 좌우 정치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풍경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 좌우파 정치인들의 마크롱 지지 선언은 자칫 프랑스 기득권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크다. 르펜도 이를 놓칠세라 결선투표를 앞두고 연일 “부패한 기득권 정치인의 지지를 받는다”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이 없다”는 말로 그를 공격하고 있다. 물론 1차 투표 직후 실시된 결선투표 여론조사에서 마크롱과 르펜은 각각 64% 대 36%, 60% 대 40%, 61% 대 31%의 결과를 보였다. 2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마크롱이 앞선다는 전망이다. 이변이 없는 한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이 집권하는 것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르펜, 아버지 포함 극단주의자 출당
그럼에도 르펜은 이번 선거에서 승패와 관계없이 최대의 정치적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극우파는 2002년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대선 결선전에 올랐는데 당시와 양상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에서 극우파는 결선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지만 동시에 국민의 싸늘한 시선도 함께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1차 투표에서 당시 우파 공화국연합(RPR) 소속의 현직 대통령 자크 시라크가 19.88%, 극우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현 르펜 후보의 부친)은 16.86%를 각각 획득해 결선에 올랐다. 당시 좌파인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16.18%로 3위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결선투표는 의외로 싱거웠다. 극단적인 정치세력인 극우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좌파와 우파가 단결해 시라크를 찍었다. 결선투표는 82.21% 대 17.79%로 시라크의 압승이었다. 1차 투표에 비해 시라크는 무려 62.33%포인트를 더 획득했지만 르펜의 득표 확장성은 1%포인트도 되지 못했다. 대다수 프랑스 유권자가 극우정치운동에 거부감을 보였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1차 투표에서 1위인 마크롱에 불과 2.71%포인트 뒤져 2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결선투표에서 31~40%를 득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2년에 비해 1차 투표 지지율이 4.4%포인트 높아진 데다 2차 투표 예상 득표율은 22.21%포인트나 높아졌다.
 
2차 투표에서의 득표 확장성은 18.70%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르펜이 아버지를 비롯한 극단주의자들을 출당시키는 이른바 ‘탈악마화’ 정책으로 국민전선을 ‘인간의 얼굴을 한 극우정당’으로 탈바꿈한 것이 상당히 먹히고 있는 셈이다. 르펜의 약진은 ‘톨레랑스의 나라’의 프랑스가 ‘자국 우선주의’로 가는 시금석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번 대선 결선주자들의 현실적인 수권 능력이다. 특히 유력 주자인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면 국정을 어떻게 수행할 것이냐에 관심이 쏠린다. 마크롱은 ‘단기필마’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기반이 국민밖에 없는 ‘신선란’ 정치인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 그가 지난해 4월 6일 조직한 앙마르슈(En Marche! 전진)라는 정치조직은 정당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선거를 치르기 위한 개인 네트워크 조직 수준이다. 이름도 자기 이름 이니셜인 E와 M을 바탕으로 멋진 말을 만들어 붙인 것이다. 마크롱과 앙마르슈는 대선전에선 위력을 발휘했다. 유럽연합(EU)을 주도하고 친시장 정책으로 경젱력을 추구하면서 좌파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기본적으로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인이란 점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8월 총선서 앙마르슈 약진할지 관심
하지만 현실정치에선 다를 수밖에 없다. 577명의 하원의원, 348명의 상원의원, 74명의 프랑스 지역 유럽의회, 101명의 도의원 중 앙마르슈 소속은 한 명도 없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기성 정치인이나 기득권 세력이 없어 때 묻지 않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마크롱이 대통령이 돼도 그를 받쳐줄 허리가 될 정치 세력이 없다시피 하다. 현재 프랑스 하원은 좌파 사회당이 280석, 우파인 공화당이 194석으로 분할하고 있다. 독립성을 유지하는 9개의 정당이 연합한 민주당-무소속연합(UDI)이 30석, 녹색당이 17석, 사회자유당이 13석, 극좌 좌파당이 10석을 차지하고 있다. 르펜이 1차 투표 직후 탈당한 극우 국민전선은 무소속(8명)보다 적은 2석이 고작이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선 누가 당선돼도 허리 없이 통치해야 하는 처지다.
 
이러다 보니 ‘포스트 대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1959년부터 적용 중인 5공화국 헌법에 따라 프랑스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는 행정을 총괄하게 된다. 책임총리인 셈인데, 여소야대일 경우 야당 대표가 총리를 맡아 동거정부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이 소속한 여당에 의원이 한 명도 없거나 2명뿐인 기막힌 상황이 곧 발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묘한 형태의 좌우 연립정부가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정치세력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국정을 꾸려나갈 수 없는 묘한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다.
 
마크롱의 정치적 뿌리는 좌파인 사회당이다. 올랑드 대통령 정권에서 보좌관과 경제장관을 지냈다. 올랑드 정권에서 그가 한 일은 올랑드의 좌편향 정책을 말린 일이다. 이에 따라 좌우 균형감각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좌우 누구와도 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오는 8월로 예정된 의회 선거다 이번 선거에서 앙마르슈가 어떤 결과를 얻을지 관심이 모인다. 대통령만 바꾸고 기존 좌우 구도는 그대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는 정당의 대표가 총리를 맡아 앞으로 마크롱과 동거정부를 꾸리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전망이다. 좌우 대연정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아닌 의회권력까지 성난 국민이 갈아치울 경우 ‘21세기판 프랑스혁명’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프랑스를 지켜보는 이유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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