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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움직이는 호텔 ‘차박’ … 어디서든 간편하게 캠핑

중앙일보 2017.04.29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차 안에서 숙식 해결하는 캠핑족 
지난 21일 어둑해진 저녁 무렵, 주상절리가 아름다운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의 임진강변. 중고차 판매업을 하는 지희준(43)씨의 승합차가 언덕을 내려와 자갈밭 강변에 멈춰 섰다. 지씨의 차는 일반 스타렉스보다 천장이 조금 더 높은 리무진 모델. 차 뒷좌석 문을 여니 자동차 시트 대신 전기매트가 보인다. 매트를 들추니 가죽 재질의 침대가 나왔다. 성인 남성 두 명이 여유롭게 누울 수 있을 크기였다.
 

캠핑카·캠핑용 트레일러는 비싸
출퇴근용 SUV 필요에 맞게 개조
전기매트·냉장고·싱크대까지 설치
무시동 히터 등 총 비용 700만원
차 위에 루프탑 텐트 설치하기도
손 많이 가지만 뒷좌석보다 넓어
“10분도 안 돼 캠핑 준비 마쳐 편리
습기 걱정 없고 안전해 자주 즐겨”

이 ‘침대’와 운전석 사이에는 수도꼭지가 달린 싱크대가 설치돼 있었고, 그 옆엔 소형 냉장고도 보였다. 냉장고 옆에 놓인 높이 40㎝가량의 갈색 가방을 여니 물도 내릴 수 있는 간이 변기가 나왔다. 침대 아래 서랍은 보물 창고였다. 커다란 서랍은 라면과 버너, 부탄가스, 일회용 컵, 각종 양념류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차 한쪽 구석엔 빨간 소화기도 보였다.
 
서랍 아래 감춰져 있던 나무판자를 당겨서 꺼냈다. 차에 설치된 테이블이었다. 테이블 아래쪽에 작은 다리를 돌려서 끼우고, 옆에 접이식 의자까지 놓자 완벽한 식탁이 만들어졌다. 지씨의 ‘차박’(車泊·차 내부를 개조하거나 차 안에 텐트, 매트 등을 설치해 숙식을 해결하는 캠핑) 준비는 이렇게 끝났다.
 
공기 좋은 곳에 차를 세운다. 테이블과 음식을 꺼낸다. 먹고 쉬고 즐긴다. 어디서든 간편한 캠핑, ‘차박’의 매력이다. 지난 22일 임진강변에서 캠핑을 즐기는 차박족. 오른쪽부터 지희준·장범석·박성우·박대희씨. [김경록 기자]

공기 좋은 곳에 차를 세운다. 테이블과 음식을 꺼낸다. 먹고 쉬고 즐긴다. 어디서든 간편한 캠핑, ‘차박’의 매력이다. 지난 22일 임진강변에서 캠핑을 즐기는 차박족. 오른쪽부터 지희준·장범석·박성우·박대희씨. [김경록 기자]

지씨가 이런 편의 사양들과 대용량 배터리를 통한 전기설비, 시동을 켜지 않아도 작동하는 무시동 히터 등을 모두 설치하는 데 든 비용은 총 700만원 정도다. 무시동 히터를 제외하면 500만원대로도 내부를 지씨 차량과 비슷한 수준으로 개조할 수 있다. 하지만 태양열 충전 시스템과 TV, 위성 안테나 등을 추가하면 1000만원 초반대까지 비용이 올라간다.
 
지씨는 “차박을 시작하면서 생활이 달라졌다. 평소에도 차를 타고 가다가 경치 좋은 곳이 보이면 공터에 그냥 차를 세우고 테이블을 꺼낸다. 그러면 1분도 안 걸려 카페가 완성된다. 물을 끓여 커피라도 한잔 타 먹으면 그 자체로 ‘힐링’이다”고 말했다.
 
침대·테이블·서랍·싱크대·냉장고 등을 모두 갖춘 지희준씨의 차.

침대·테이블·서랍·싱크대·냉장고 등을 모두 갖춘 지희준씨의 차.

지씨의 차 옆에는 주택관리사인 장범석(40)씨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같은 캠핑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두 사람은 여유가 생길 때마다 함께 캠핑을 즐긴다.
 
지씨와 달리 장씨는 자신의 차(그랜드 카니발) 위에 루프탑 텐트(차량 지붕 위에 설치하는 텐트)를 설치해 차박을 한다. 차 지붕에 평평한 철제 바닥을 설치했고, 그 위에 노란색 텐트를 쳤다. 텐트 입구에 걸쳐져 있는 철제 사다리에 올라 텐트에 들어가 보니 보기보다 넓고 아늑했다. 텐트 아래엔 조리 도구부터 각종 공구까지 다양한 캠핑 장비들이 걸려 있고, 다시 그 밑으로 작은 탁자와 함께 스피커가 놓여졌다. 텐트 설치를 끝낸 장씨는 석유 랜턴에 불을 붙여 은근한 조명을 만든 뒤 휴대전화로 음악을 틀었다. 텐트 아래 스피커에서 가수 김광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없던 장씨의 차 위와 주변은 1시간도 채 안 돼 안락한 보금자리로 변했다.
 
◆출퇴근 땐 차, 세우면 집·카페로 변신=차를 이용하는 모든 캠핑을 차박 캠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크게 세 가지로 유형이 나뉜다. 완성된 상태로 판매하는 캠핑카를 구입하거나 캠핑용 트레일러를 장착하는 유형이 있다. 전기·수도부터 TV, 냉장고, 침대 등 편의시설이 처음부터 다 갖춰져 있어 가장 편하다. 그러나 캠핑카는 대부분 1억원 이상의 고가인 데다 크기가 너무 커 출퇴근이나 시내 주행용으로 쓰기는 어렵다. 또 지하주차장이나 폭이 좁은 시내 주차장에는 주차하기도 어렵다. 사실상 캠핑용으로만 쓸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씨처럼 캠핑카가 아닌 일반 차량의 시트를 떼어내고 내부를 개조하거나, 혹은 시트를 접고 그 위에 간단히 매트 등을 깔아 캠핑을 하는 유형이다. 평소엔 일반적인 차로 이용할 수 있고, 차만 세우면 언제 어디서든 캠핑을 할 수 있다. 보조배터리와 인버터 등 전기설비를 갖추면 냉장고나 전기매트·전자레인지까지 쓸 수 있고, 물탱크를 설치해 싱크대도 넣을 수 있다. 또 어디서든 테이블만 꺼내 간단하게 티타임을 즐길 수 있고, 차에 누워 선루프를 통해 하늘과 별을 보는 낭만도 누릴 수 있다. 차만 세우면 그곳이 집이 되고, 카페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장씨처럼 차 위에 루프탑 텐트를 구입해 차량 지붕에 싣고 다니는 형태다. 뒷자석을 눕히는 것보단 손이 많이 가지만, 공간이 더 넓고 땅에 치는 텐트보다 훨씬 간단하게 텐트를 칠 수 있다. 또 차 안에 많은 짐을 싣고 있는 상태라도 텐트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고, 차가 들어갈 수 있으면 눈밭이든 돌밭이든 가리지 않고 텐트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뒷좌석을 접어 매트를 깔고 차 뒤쪽을 텐트로 덮은 박대희씨의 차.

뒷좌석을 접어 매트를 깔고 차 뒤쪽을 텐트로덮은 박대희씨의 차.

 
◆의자 접고 매트 깔면 준비 끝 =금세 캠핑 준비를 다 끝낸 두 사람은 캠핑용 테이블에 앉아 캔맥주로 목을 축였다. 시간이 더 흐르자 역시 캠핑을 하다 두 사람과 인연을 맺은 박성우(43)씨와 박대희(36)씨가 차례로 도착했다. 회사원인 성우씨는 바닥에 1인용 텐트를 쳤고, 중소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대희씨는 닛산 SUV 캐시카이의 뒷좌석을 접어 차박 캠핑을 준비했다. 대희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캠핑을 한다. 원래 그냥 캠핑을 했는데 3년 전쯤 SUV를 사면서 차박을 하게 됐다. 그냥 의자 접고 에어매트만 깔면 어디서든 잘 수 있다. 매트를 산 것을 빼면 따로 돈 드는 것도 없다. 간편하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 걱정도 없는 데다 안전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대희씨는 10분도 안 돼 캠핑 준비를 마쳤다.
 
조금 뒤엔 지씨처럼 스타렉스를 개조해 차박을 하는 경연상(44)씨도 아내와 딸과 함께 도착했다. 그리고 다섯 대의 차 사이에 모닥불이 피워졌다. 테이블 위에는 광어회·갈빗살·문어숙회·라면·수제 소시지·소라·멍게 등 각자 가져온 다양한 음식이 펼쳐졌다. 소주도 곁들여졌다.
 
밤이 깊도록 음악을 듣고 얘기를 나누던 이들은 자정이 넘으며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지씨 차 안에서 함께 잠을 잤다.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차 안은 따뜻했다. 무시동 히터와 전기 매트 덕분이었다. 220V 콘센트도 장착돼 있어 휴대전화 충전도 문제없었다.
 
지씨는 “예전엔 여행 한번 가려면 차 막히고, 운전하느라 피곤하고, 가는 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차박을 시작하면서 어디든 그냥 좋은 곳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일상이 여행이 됐다”고 말했다.
 
집에서보다 더 깊은 잠에 들었다가 눈을 떴다. 차박 캠핑의 아침이 밝았다. 캠퍼들은 만둣국과 밤에 남은 재료를 간단히 튀겨 만든 튀김 요리를 다 같이 나눠 먹으며 아침을 해결했다.
 
성우씨는 만둣국을 건네며 “캠핑을 하면서 만난 사람 중엔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텐트를 잘 못 치면 도와주려고 하고, 자기가 가져온 걸 나눠 먹으려 하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배려한다. 캠핑에 빠져 사는 이유”라고 말했다.
 
[S BOX] 스타렉스·카니발 등 11인승 이상 차종은 내부 개조 합법
포털사이트에 차박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차박 가능한 차’가 뜬다. 차량을 개조하거나 뒷좌석 시트를 접어 차박을 하기에 적합한 모델들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내부를 개조할 수 있는 차량은 현대차의 스타렉스나 기아차의 카니발 같은 승합차다. 공간이 넓고 천장도 높아 다양한 편의사양을 설치할 수 있다.
 
또 쌍용차의 로디우스나 코란도 투리스모 11인승도 가능하다. 중요한 건 11인승 이상인 차종만 합법적으로 내부 개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캠핑카 제조 업체 해나름시스템 이덕영 대표는 “11인승 이하 차량도 내부 구조 변경이 아닌 외부 형식 개조를 통해 캠핑 용도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중고차는 불가능하고 등록 전인 새 차만 가능하며, 차종이 아예 바뀐다. 비용도 더 많이 든다”고 말했다.
 
개조하지 않고 뒷좌석만 접어 잠을 자는 사람들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레저용 차량(RV)을 주로 이용한다. 쉐보레의 올란도·캡티바, 쌍용차 코란도 등이다. 특히 올란도는 인터넷에서 ‘올란텔’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차박 캠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차박을 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신차 값이 2000만원 초반대부터 시작돼 가격 부담도 적기 때문이다.
 
최근엔 차박 캠핑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크게 넓어졌다. 발 뻗고 누워도 충분할 정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뒷좌석을 완전히 접을 수 있게 한 SUV 차들이 많이 출시됐기 때문이다. SUV 뒷좌석 의자를 접어 캠핑하는 박대희(36)씨는 “최근에 나오는 차 중 상당수가 뒷좌석을 접을 수 있어 차박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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