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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골퍼·팬 많은 한국, LPGA 중흥에 큰 역할

중앙일보 2017.04.28 01:00 종합 32면 지면보기
LPGA 커미셔너 마이크 완 칼럼 
2017년 전세계 골프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누굴까.
 

어릴 때 코스 돌며 아버지와 대화
그 가르침, LPGA 이끄는 데 활용
골프 투어 글로벌화 즐거운 도전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의 마이크 완(52) 커미셔너를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는다. 올해 초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의 팀 핀첨(70)커미셔너가 퇴임한 이후 완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는 2010년 커미셔너로 부임한 이후 LPGA투어를 미국 투어가 아닌 전세계적인 투어로 성장시키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고 있다. 완 커미셔너는 이번 달부터 매월 1회씩 중앙일보에 독점 칼럼을 게재키로 했다.
 
마이크 완 LPGA 커미셔너는 “한국은 훌륭한 여성 골퍼들이 나온 나라다. 이 칼럼을 통해 한국 팬들과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LPGA]

마이크 완 LPGA 커미셔너는 “한국은 훌륭한 여성골퍼들이 나온 나라다. 이 칼럼을 통해 한국 팬들과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LPGA]

안녕하세요, 저는 LPGA투어의 커미셔너 마이크 완(Mike Whan)입니다. 이 칼럼을 통해 제 생각과 경험들을 한국 골프팬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무척 기쁩니다. 저와 LPGA투어에게 한국은 대단히 중요한 곳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여성 골퍼들이 나온 나라이기도 합니다. 또 LPGA투어를 사랑하는 열성적인 팬들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2017년에 치러진 7개 대회 가운데 벌써 다섯명의 한국선수가 우승을 했습니다. 이 우승자들 중에는 올해 첫 메이저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 우승자인 유소연도 있습니다.
 
제가 투어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상당수는 바로 한국 선수, 투어 스폰서, 그리고 한국팬들과 연관돼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커미셔너로서 첫 번째 계약을 한 대회가 바로 해마다 인천 스카이72골프&리조트에서 치러지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이었습니다. 제가 일하기 시작한지 불과 2주일 만에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이렇듯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저는 한국에 계신 팬들과 스폰서들이 이 칼럼을 통해 LPGA와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 2010년 1월부터 공식적으로 커미셔너로 활동하면서 골프는 제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제가 ‘골프’라는 세계를 알게된 계기는 캐디를 맡았던 것입니다. 저는 9세 때 캐디를 시작했고, 훗날 골프코스를 관리하는 일까지 맡았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년 여름이면 골프코스에서 일을 했습니다. 잔디를 깎고, 핀과 홀의 위치를 변경하고, 관개시설 수리는 물론 벙커를 설치하는 일까지 골프 코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골프가 제 인생의 일부라는 말은 확실히 맞는 말입니다. 제 아버지는 제게 골프를 가르쳐주신 많은 선생님 중 한 분이셨고, 우리 부자가 가장 깊게 나눴던 대화들은 골프코스 위에서 이뤄졌습니다. 저와 제 가족들은 페어웨이를 걸으며 진실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겼습니다. LPGA 스태프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저는 아버지가 전해주셨던 말들을 그들에게 많이 전하곤 합니다. 또 코스 위에서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가르침들을 LPGA투어를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업계에 입사하기 전에 저는 Proctor and Gamble(P&G)이라는 회사에서 크레스터 치약 부문의 마케팅 부서장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와 골프에 대한 열정을 느낀 순간, P&G의 마케팅 일을 그만두고 윌슨 스포츠와 테일러메이드 골프에서 골프 제품 관련업무를 총괄했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후에 하키 용품회사의 CEO로 부임하게 됐습니다.
 
LPGA 커미셔너가 되기 위한 저의 길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처음 헤드헌터 회사로부터 커미셔너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저는 캘리포니아에서 아내·세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을 설득해 플로리다로 이주한다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CEO 시절 꽤 많이 여행을 해봤고, 가족들과 이사를 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헤드헌터에게 저는 그저 타이밍이 좋지 않다며 고사하면서 훌륭한 커미셔너가 될 만한 몇 명의 다른 후보자를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 장소에 와달라는 연이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인터뷰 장에 들어선 순간 저는 그 자리에서 매혹됐습니다. 당시 테이블 한쪽에는 28명이 앉아있었고, 저는 다른 쪽에 혼자 앉았습니다. 마치 저를 상대로 한 상원 청문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인터뷰에서 받은 모든 질문은 골프에 관한 것과 LPGA가 직면한 사업상의 과제들이었습니다. 나는 골프라는 게임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마치 집에 돌아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나는 그 순간 새로운 열정을 발견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LPGA의 선발위원회와 4차례의 회의를 마친 뒤 나는 LPGA의 여덟 번째 커미셔너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9년 가을,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임기 시작 사실을 알렸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LPGA투어를 더욱 글로벌화 하기 위한 도전을 즐기고 있습니다. TV 노출을 늘리는 한편 세계 최고의 여성 골퍼들과 전세계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성적인 팬들을 더 가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이 칼럼을 통해 코스 안팎에서 일어나는 투어의 뒷이야기들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또한 커미셔너의 책상 뒤에서 일어나는 생각들과 제 의견을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골프계 ‘수퍼파워’ … 월 1회 투어 뒷얘기 중앙일보 게재
지난해 말 LPGA 롤렉스 어워드에서 리디아 고와 함께 있는 마이크 완 커미셔너. [LPGA 제공]

지난해 말 LPGA 롤렉스 어워드에서 리디아 고와 함께 있는 마이크 완 커미셔너. [LPGA 제공]

마이크 완은 … 지난 2010년 LPGA투어의 8번째 커미셔너로 부임해 LPGA 투어를 글로벌 투어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윌슨 스포츠와 테일러메이드 등 유수의 스포츠 브랜드에서 활약했으며, 미국 내에서 가치가 하락한 기업을 다시 정상궤도로 올려놓는 전문 경영인을 뜻하는 ‘턴 어라운드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마이크 완은 특히 커미셔너라는 직책이 갖는 고정관념과 격식을 없애고, 수행원 없이 전세계 골프대회장을 누비며 선수·매니저·캐디 등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LPGA투어는 마이크 완 회장이 부임한 이듬해인 2011년 23개 대회(총상금 4150만 달러, 약 469억원) 규모에서 2017년엔 34개 대회(6735만 달러·약 760억원)로 늘어나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마이크 완은 또 최근 월드 골프 파운데이션 회장으로 선출되며 전세계 골프계를 이끌고 있다.
 
LPGA 커미셔너 마이크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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