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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마다 찾아오는 '희망고문'…내 통신요금 내려갈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7.04.27 18:14
20대 대선에 '제2의 세금' 통신요금을 낮추겠다는 공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가구당 통신비는 14만4000원. 지난 2013년 15만2800원을 찍은 뒤 꾸준히 내렸지만, 일반적인 가정에 통신비는 여전히 아파트 관리비와 맞먹는 부담이다. 과연 대선 주자들은 통신비를 낮출 수 있을까.
 

문재인 '기본료 인하' 초강수…"통신사 생존 불가능한 공약"
안철수 '온국민 데이터 무제한'…"요금 인하 효과 적어 임펙트 없다"
전문가들 "사물인터넷·5G 등 통신 산업 발전도 고려한 공약 내놔야"

가장 강력한 공약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안이다. 문 후보는 불과 한 달 전만해도 "이동통신업계와 마찰을 빚을만한 공약은 내놓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자 '월 1만1000원 기본료 인하'란 공약을 내놨다. 2세대(2G)나 3세대(3G) 표준요금제는 '기본료+통화료'로 구성된다. 하지만 데이터 사용량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4세대(4G) 요금제엔 '기본료'란 개념이 없다. 사실상 2G·3G 이용자에만 해당하는 공약인 셈이다. 
이에 대해 이영환 더민주당 보좌관은 "우리가 내리려고 하는 통신 기본료는 2G부터 4G까지 이통사가 가입자 한 명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원가비용"이라며 "모든 휴대전화 사용자의 원가 1만1000원은 이통사가 부담하고 그 이상의 부가 서비스만 소비자가 부담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국내 휴대전화 가입자 통신요금에서 일제히 1만1000원을 내리면 이통사 손실은 얼마나 될까. 통신업계는 지난해 기준 7조9000억원의 수입이 감소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기본료 인하에 따른 손실액은 지난해 이통 3사 영업이익 합산액 3조6000억원의 2배가 넘어 적자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 측의 논리는 이렇다. 설비투자 비중이 높은 통신업계 특성상 감가상각비 규모도 크기 때문에 실제로 벌어들이는 현금보다 영업이익 규모가 적어 보이는 일종의 '착시 효과'가 있다는 것. 가령 1000만원짜리 떡볶이 기계로 한달에 300만원의 현찰을 벌었음에도 기계의 수명으로 나눈 감가상각비를 250만원으로 잡으면 마치 50만원밖에 벌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통사들은 2G·3G 설비처럼 감가상각 기간(8년)이 끝난 설비를 이용해서도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장부상 영업이익보다 실제 벌어들이는 현금이 상당하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이통 3사가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영업활동 현금흐름)은 10조2000억원에 달했다. 기본료 인하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논리다.
 
회계전문가들은 그러나 이통사 통신설비가 노후화하는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감가상각 비용 부담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박동흠 현대회계법인 공인회계사는 "이동통신의 세대가 넘어가는 시기가 빨리질수록 막대한 돈을 투자한 통신설비가 쓸모없게 되는 시간도 빨라진다"며 "그만큼 감가상각비로 털어내야 할 비용 부담이 더 크게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통사들은 현재 현금을 잘 벌고는 있지만 설비 관련 비용 부담 탓에 기본료 인하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통사는 국민연금이나 소액주주 비중도 높다. 기본료 인하에 따른 손실은 국민연금 가입자와 소액주주의 주머니에서도 일부 충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시장 경쟁을 통한 요금인하'를 강조한다. 제4 이동통신사 신설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또 매월 데이터 사용 한도를 넘으면 느린 속도로나마 공짜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온국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공약화 했다.
 
그러나 안 후보 공약에도 허점은 있다. 제4 이동통신사 설립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추진됐지만 초기 진입장벽이 높은 통신업계 특성상 마땅한 사업자를 찾지 못해 표류했다. '온국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도 현재 이통사들이 매달 5000원의 추가 요금을 받고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다. 대선 공약으론 다소 스케일이 작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제4 이통사에 주파수 가격 인하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시장 진입을 도와줄 것"이라며 "온국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도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사용자 편의를 늘려는 공약으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저소득층의 통신요금 인하에 초점을 맞춘 '보편요금제'를 내놨다. 음성·문자 무제한에 데이터 2GB 서비스를 국민 누구나 기본적으로 이용해야 할 보편적인 통신 인프라로 보고 현재 4만원대 요금제를 2만원대로 끌어내리겠다는 것이다. 김하늬 정의당 정책연구위원은 "보편 요금제로 제시한 2GB 데이터 한도는 지극히 부족하지만 저소득층도 싼 값에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들의 인위적인 요금제 인하 공약이 시장을 왜곡시킬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통신사들의 수익이 줄면 사물인터넷이나 5세대 이동통신에 대한 투자도 소홀해질 것"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서 더 많은 효용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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