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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청년 윤봉길

중앙일보 2017.04.27 03:23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정호논설위원

박정호논설위원

모레 29일은 매헌(梅軒) 윤봉길(1908~32) 의사의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85주년을 맞는 날이다. 일제강점기 짓눌렸던 한국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은 쾌거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은 85년 전 그날 일왕 탄생일을 기념하던 일본군 수뇌부에 수통형 폭탄을 던졌다. 1909년 10월 안중근(1879~1910)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이어 대한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다.
 
윤 의사는 중국인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중국 국민당을 이끌었던 장제스(蔣介石·1887~1975)가 그랬다. 의거 직후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니 감격스럽다”고 했다. 윤 의사에 대한 고마움에서 중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전폭 지원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1943년 12월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처음 보장받은 카이로선언까지 이어졌다.
 
윤 의사와 중국의 인연은 요즘에도 계속된다. 중국에선 윤 의사 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해마다 열리는 ‘윤봉길 평화축제’에 8년째 참가하고 있다. 29~30일 이틀간 진행되는 올해 축제에도 하얼빈 안중근기념관, 하얼빈 731부대 죄증진열관 관계자 등 네 명이 찾아온다. 세균 마루타 부대 등 일제의 만행을 설명하고, 동북아 평화음악제 등 부대행사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그런데 올해엔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 무엇보다 방한단 규모가 예전의 절반 정도로 줄었다. 지난해만 해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재지인 상하이·항저우(杭州)·충칭(重慶)기념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旅順)감옥 관계자 등 10여 명이 찾았다. 그 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 측의 반발, 혹은 몸사림이란 말이 들려온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윤 의사가 고향 땅을 떠나 저 멀리 상하이로 가면서 남긴 말이다. ‘장부가 집을 떠났다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청년 윤봉길의 결기가 지금 되레 새롭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는 안중근 의사의 ‘장부가’도 떠오른다. 개인은 물론 국제관계도 그런 큰 뜻이 중요하다. 위기의 동북아 정세를 풀어 갈 열쇠가 된다. 일제의 기만책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농민이 유혈 충돌했던 1931년 만보산(萬寶山) 사건을 해결한 계기도 윤 의사의 의거 덕분이었다. 눈앞의 소리(小利)에 양국의 대리(大利)를 쪼그라뜨린 중국의 태도가 아쉽기만 하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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