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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전설의 10년’과 시진핑

중앙일보 2017.04.27 03:22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칼럼니스트·대기자

좋은 시절은 사라졌다. 한국의 체면은 엉망이다. 중국은 한국의 자존심을 긁어댄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말했다.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4월 초 미국 플로리다 정상회담).
 

1987~97년 중국을 무시했던
시절 떠올린 시진핑 역사 강의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
대선후보 TV 토론, 추적 없어
‘왕따 한국’은 주인의식 결핍,
북핵에 과도한 중국 의존 탓

시진핑 이야기는 트럼프 뇌리에 박혔다. 트럼프는 “(시진핑은)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얘기했다. 수천 년(세월)과 많은 전쟁에 대해 말했다.…(얘기한 지) 10분 후 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10분짜리 짧은 역사 강의- 트럼프의 인식 전환은 전격적이다. 그의 내면은 왜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했을까. 그 역사 수업의 설득과 선동 요소는 무엇일까. 많은 전쟁은 뭔가. 트럼프의 과잉해석일까. 내막은 덮여져 있다.
 
시진핑의 말은 우리에게 모욕적이다. 그 역사 인식은 왜곡과 오만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반응은 평범하다. “한국이 중국 일부가 아니었다는 점은 국제사회가 인정한 역사적 사실”(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이라는 브리핑에서 멈췄다. 25일 밤 대선후보 TV 토론(중앙일보·JTBC 주최)에서도 쟁점이 되지 않았다. 역사의 불감증이 원탁에 스며든 듯했다. 중국에 대한 눈치 보기인가. 일본과 미국 지도자들이 자극적인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후보 5명 모두 발언의 진상을 따져보지 않았다.
 
좋은 시절은 존재했다. 한·중 관계에서 ‘전설의 10년’이다. 1987년부터 97년 IMF 외환위기 직전까지다. 서울올림픽 때 중국은 한국의 산업화를 부러워했다.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때 중국 요청으로 한국은 복사기 수백 대와 승용차를 지원했다.”(김한규 21세기 한·중교류협회장) 베이징 자금성은 사대(事大)와 조공의 현장이다. 조선 사신은 그곳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 시절 한국 관광객 상당수는 으스댔다. 중국을 내심 무시하며 호기를 부렸다. 그곳에서 조상들의 고난을 날려 보냈다.
 
전설의 10년은 이런 풍경도 생산했다. 95년 11월 일본 오사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다. 한·일 관계는 긴장 상태였다. 일본의 과거사 도발 때문이었다. 김영삼(YS) 대통령은 무라야마 총리를 압박했다. YS 특유의 순발력이 등장했다. 박진(당시 공보비서관) 전 의원은 이렇게 회고한다. “김 대통령은 나에게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에게 가서, 정원에서 산책 뒤 회의장에 들어가자는 제의를 하라고 했다. 나는 지시를 전했다. 장쩌민 주석은 몸을 돌려 김 대통령 쪽으로 걸어와서 ‘참 좋은 생각입니다’하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중 정상은 다른 정상들의 입장 후에도 5분 동안 무언의 산책시위를 벌였다. 개최국 무라야마 총리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두 정상은 의기투합하여 산책을 즐겼다.”(『청와대 비망록』)
 
외교는 나라의 위상과 실력을 반영한다. 그 장면은 한국 대통령의 외교 단막극이다. 자신의 연출무대에 중국 주석을 즉석 동원한 것이다. 그 시절에나 가능했던 파격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다. 전설의 10년은 한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할 것이다.
 
한반도 정세는 긴박하다. 미국 핵 항모 칼빈슨은 일본 호위함과 합동 훈련을 했다.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현상유지(status quo)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은 북한을 압박한다. 한국은 그런 북핵 해결 논의에서 소외돼 있다. 심상정 후보의 말은 실감 난다. “한반도 문제가 다뤄지는 테이블에 우리 의자가 없다.” 이른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다. 문재인 후보는 그 용어를 “모르겠다”고 했다. 코리아 패싱은 콩클리시다. 맞는 표현이냐, 아니냐가 본질은 아니다. 핵심은 ‘한국 왕따 현상’의 심각성이다.
 
소외 현상은 권력 과도기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속엔 한국에 대한 경멸과 비웃음이 깔려 있다. 북한 핵실험 때마다 한국은 중국에 매달렸다. 북한 정권에 압력을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한·미 동맹에 의존한다. 그 반복적 행태는 구걸 외교의 이미지를 낳았다. 북한 핵실험에 한국의 운명이 걸려 있다. 우리 사회는 대체로 태평하다. 관전평에만 익숙하다. 국민적 단합은 허약해졌다. 사드 장비 배치로 분란은 커졌다. 중국은 그런 한국을 얕잡아 본다.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시진핑 발언은 상징적이다. 그 속에 지정학적 야망이 담겨 있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논쟁을 회피한다. “한국 국민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만 했다. 국제관계는 인간관계다. 냉정과 절제, 분노와 단호함을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시당한다. 문재인은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주인이다.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 주인의식은 절실하다. 시진핑 발언의 진실을 추적해야 한다. 그 집요함이 한반도 주인의식을 강화한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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