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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문재인이 “허허”하면 내가 한 잔, 안철수 “아닙니다”에 네가 한 잔, 홍준표 “좌파”엔 그 옆 친구 원샷

중앙일보 2017.04.27 02:44 종합 12면 지면보기
2030 유권자, 놀며 즐기는 대선 TV 토론
“안철수가 ‘아닙니다’라고 할 때, 홍준표가 ‘좌파’라고 할 때, 문재인이 ‘허허’ 웃을 때마다 원샷을 한다.” 지난 2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올라온 게임의 규칙이다. 이 글은 26일까지 2000여 명의 사용자가 자신의 계정에 리트윗(공유)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각자의 후보를 정한 뒤 대선 TV토론에서 후보자들이 해당 표현을 사용할 때마다 술을 마시는 게임이다. 지난 23일 친구 두 명과 함께 이 게임을 했다는 대학생 이모(22)씨는 “문 후보에게는 ‘허허’와 ‘하하’를, 안 후보에게는 ‘아닙니다’와 ‘그렇지 않습니다’를, 홍 후보에게는 ‘좌파’와 ‘북핵’을 키워드로 삼았더니 세 명 모두 10여 잔을 마셔 상당히 취했다”고 말했다.

후보들 발언·재미있는 답변
SNS로 즐기는 법 퍼져나가
대학생 “두 시간 토론 보며 게임
3명 모두 10잔 넘게 마시고 취해”

 
젊은 유권자들은 TV토론에서 나온 후보들의 돌발 발언과 우스꽝스러운 답변을 놓치지 않는다. 곧바로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회사원 송모(29)씨는 “토론을 본 다음날은 반드시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져 본다. 어김없이 후보들의 ‘짤방(짤림 방지의 약어, 웃긴 장면으로 구성한 사진이나 영상을 의미)’이 올라오는데 아주 기발하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제1차 토론 말미인 오후 10시쯤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갑철수’라는 단어가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토론 도중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라는 질문을 한 것 때문이었다. 질문하는 안 후보의 단호한 표정과 ‘갑철수’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문 후보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담은 영상은 다음날 종일 인터넷을 달궜다. 누군가가 안 후보의 필체를 흉내 내 ‘문재인은 안철수가 갑철수가 아니란 걸 인증합니다’라고 써 만든 ‘인증서’가 온라인상에서 널리 퍼지기도 했다. 예민한 질문을 피해 가는 문 후보의 “이미 답변했습니다”라는 답변을 풍자한 글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후보자들의 성향을 보여주는 작명 작업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과 말투를 보여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유무룩(유승민+시무룩)’으로, 지난 23일 토론 때 “돼지흥분제 논란을 빚은 후보와는 토론하지 않겠다”고 일갈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심크러시(심상정+걸크러시)’로 불리기도 한다. 걸크러시는 여성도 반할 만한 멋진 여성을 뜻하는 용어다.
 
만화로 구성한 후보들의 모습이나 연예인과 대선후보를 비교한 이미지도 인터넷에 자주 등장한다. 재미있는 콘텐트를 인터넷상에서 공유하는 데 익숙한 20, 30대의 관심이 대선과 후보들에게 모아지면서 생긴 새로운 문화다.
 
이 같은 현상의 바닥에는 후보들의 토론 내용과 자세에 대한 실망감도 깔려 있다. TV토론을 한 회도 빠짐없이 봤다는 대학생 박모(23)씨는 “그나마 상식적 질문과 답을 하는 후보에게 투표를 하려는데 선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36)씨는 “후보들의 엉뚱한 발언과 표현이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진지한 논쟁이라도 명승부라면 사람들은 이목을 집중한다. 논쟁에서 얼마나 들을 것이 없으면 마치 코미디 프로그램 보듯이 토론회를 즐기겠는가”라며 “후보들은 남은 토론에서 정치인으로서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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