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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 규제 치중 … 소유·지배구조 개선은 소극적

중앙일보 2017.04.27 01:00 경제 8면 지면보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한국 대기업 지배구조의 허약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법과 내부규율에 따른 의사 구조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정치권력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수백억원을 냈지만 동시에 ‘대가’를 요구하는 등 정경유착의 폐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자연히 이번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여러 공약을 내놨다.
 

한국경제학회 경제공약 점검 ④ 기업지배구조 개선
문, 우회출자 규제 등 백화점식 나열
홍, 한국형 디스커버리 구체성 미흡
안, 승계절차 공시 등 실효성 의문
유, 내부거래 금지 과잉규제 우려
심, 계열분리명령제 실현성 떨어져

하지만 대선 후보들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공약에 대해 한국경제학회는 낙제점을 줬다. “이대로라면 차기 정부에서도 실효성 있는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기업지배구조는 한국경제학회와 중앙일보가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해 마련한 대선후보 경제공약 심층 분석 시리즈의 네 번째 주제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

박상인 서울대 교수

대표 집필을 맡은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약이 주로 기업 ‘거버넌스’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근본적인 ‘소유·지배구조’ 개선 문제에는 소극적이다”라고 말했다. 거버넌스는 통치·관리 방식을 뜻하는 말로 주로 경영 행위와 관련돼 있다. 일감몰아주기에 따른 일부 오너가의 사익 편취, ‘거수기’ 노릇을 하는 사외이사 등이 대표적이다. 소유·지배구조는 오너가의 지분 등 출자 관계를 의미한다. 일감몰아주기 행위 등에 대한 규제 공약은 많은데 이런 행위의 근본 원인이 되는 불투명하고 복잡한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해소 방안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소유와 경영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 행위를 할 때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다른 공약과 마찬가지로 구체성 결여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 교수는 “나열식·따라하기식 공약 제시로, 효과 면에서 중복되는 공약들도 다수 있다”며 “공약 실천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 실행계획과 일정도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약자에 대한 재산권 보호는 혁신형 경제로의 이행과 산업의 고도화, 동반성장의 제도적 기반이 된다”며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주요 대선후보 5명의 공약에 대한 한국경제학회의 평가 및 분석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경제가 아닌 정치 분야 공약으로 분류한 것이 눈에 띈다. 반부패와 특권 및 특혜 철폐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우회출자 등을 통한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를 차단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대기업 공익법인의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 방안도 내세웠다. 모(母)회사의 주주가 불법행위를 한 자(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시행도 제시했다. 공약 이행에 필요한 법률 개정은 올해부터 추진한다는 일정도 밝히고 있다.
 
여러 공약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백화점식 나열에 그쳤다. 구체적인 내용도 빠져 있다. 예컨대 공익법인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누락돼 있다. 법 적용 범위도 명확하지 않다. 문재인 후보는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에 집중해 재벌 개혁에 나서겠다”고 했는데 관련 공약을 4대 그룹에만 적용할 것인지, 다른 기업에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추가 설명이 없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및 전자투표제(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직접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 의무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투명화와 공정위 의무고발제 기관 확대 및 한국형 디스커버리제 도입 등도 내세웠다. 전반적으로 경제력 집중 해소 문제를 해결하기에 부족하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이 눈길을 끄는 공약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하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독립성 및 역할 강화를 비롯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소비자집단소송제도 도입 등을 내세웠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논란이 됐던 국민연금에 대한 주주권 행사와 회계 투명성 강화도 강조했다. 최고경영자(CEO) 승계절차 공시 도입도 공약했다.
 
하지만 정책의 구체성이 결여돼 실효성은 의문이다. 예컨대 디스커버리 제도(소송 비용·시간 절약을 위해 재판 전에 소송 상대방이나 제3자에게 사건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 없이는 소비자집단소송 도입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CEO 승계 절차 공시의 실효성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가장 눈에 띄는 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를 근절하기 위해 총수일가의 개인회사와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금지하겠다는 공약이다. 매우 강력한 규제인데 이렇게까지 규제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또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공정거래 관련 법률 전반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재벌총수 일가 및 경영진의 사면·복권 금지 등을 담고 있다. 이런 개혁이 이뤄지면 창업과 경제 혁신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건 긍정적이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 해소를 위한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개혁은 담지 않고 있다는 면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금산분리 규제 강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을 구체적으로 약속한 유일한 후보다. 보험사의 자산운용비율 산정시 보험사가 보유한 유가증권을 현재는 취득 원가로 계산하는데 이를 시가로 계산하겠다는 내용이다. 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의 자산운용 비율 산정 기준이 시가로 돼있다는 점에서 형평성을 맞추자는 취지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현재 보험사는 계열사 주식이나 채권을 총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원가로 계산하면 3%를 밑돌지만 시가로 산정시 3%를 넘어 10조원 이상의 주식을 매각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시장지배력 남용 기업 및 일감 몰아주기 기업에 대한 계열분리 명령이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재도입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과잉규제로 보인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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