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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사적인 시간' 채우는 비선실세와 TV

중앙일보 2017.04.24 06:01
폴리티코 톱 기사로 오른 트럼프의 시간표. [사진 폴리티코 캡처]

폴리티코 톱 기사로 오른 트럼프의 시간표. [사진 폴리티코 캡처]

 대통령의 일정표는 통상 아침부터 밤까지 빡빡하게 짜여 있습니다. 가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세월호 참사 전후 한달간 매주 수요일을 공식 일정 없이 비워둬 도마에 오르기도 했죠.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 못지않게 널럴한 시간표를 선호하는 모양입니다.
 

"여유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트럼프 스타일
NYT 백악관 밖 조언 그룹 20명 소개
"칼빈슨함 해프닝은 폭스뉴스 사랑 때문"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널럴한' 시간표를 선호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일정표의 큰 블록을 '사적인 시간(private time)'으로 잡아놓고 친구나 변호사, 옛 참모 등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나누며 조언을 듣는다는 것이죠. 
 
이는 트럼프가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던 시절의 업무 스타일을 그대로 백악관에 들여왔기 때문이랍니다. 트럼프는 1987년 출간한 자신의 책 『협상의 기술』에서 느슨한 스케줄은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적었는데요. 
트럼프의 책 '협상의 기술' 표지.

트럼프의 책 '협상의 기술' 표지.

 
사라 샌더스 백악관 부대변인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약간 융통성있게 놔두는 것이 대통령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스타일은 '전통적으로' 일해온 백악관의 일부 참모들에게는 좌절감을 안겨준다고 합니다.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트럼프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것이죠. 
 
공식 절차를 통해 백악관에 방문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폴리티코의 취재에 따르면 트럼프의 오랜 보디가드였던 키스 쉴러의 휴대전화로 연락하는 이들도 있다는데요. 특히 트럼프의 오래된 친구들은 백악관 대신 트럼프의 오랜 비서 로나 그래프(64)를 거친다고 합니다. 폴리티코는 로나 그래프는 트럼프 타워에서 25년간 근무한 트럼프의 '게이트 키퍼'라고 지난 달 보도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에겐 수많은 이들이 연결되고 싶어하는데, 그중에서 누굴 보스(트럼프)와 연결시킬지 '보스의 시각'에서 완벽하게 판단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비공식 채널을 통해 트럼프와 연결이 될까요. 

트럼프의 백악관 밖 참모 20인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을 앞두고 백악관 밖의 조력자 20명을 소개한 기사가 힌트가 될 것 같습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인과 백악관 내외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나쁘게 말하면 '비선 실세', 긍정적으로 말하면 '조언 그룹'을 추려냈는데요. 대부분 나이 든 백인 남성이었다고 합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나 정책이 오락가락한 것도 이들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꼬집었는데요. 
 
NYT가 첫손에 꼽은 실세는 '미디어 거물' 루퍼트 머독입니다. 머독은 트럼프 대통령과 매주 전화통화를 하며 정책 조언을 해주는 사이라고 합니다. 머독이 소유한 폭스 뉴스 채널은 지난해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를 지지한 바 있죠. 성추문으로 끝내 내쫓긴 폭스뉴스의 간판 스타 빌 오라일리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좋은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지지 발언을 하기도 했고요.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사진 위키미디어]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사진 위키미디어]

 
또한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가 지난해 말까지 머독의 두 딸 재산 관리를 해줬다는 사실을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2월 보도하는 등 두 집안의 특별한 관계가 입방아에 오르내린 바 있습니다. 머독과 트럼프의 밀월관계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권력과 언론의 유착이 가져다주는 위험성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폭스 뉴스의 숀 해니티, 온라인 매체인 뉴스맥스 대표 크리스 루디 등이 또 다른 언론계 조언자로 꼽혔습니다. 그밖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부동산개발업자 리처드 르프랙, 변호사 셰리 딜런, 대통령 캠프 참모진이었던 코리 르완도스키 전 선거대책본부장,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부동산 재벌 스티브 로스, 억만장자 칼 아이칸 등이 거론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해고야!"라는 대사로 유명한데요. 막상 사람을 해고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NYT는 분석합니다. 가령 트럼프의 뜨거운 선거 캠페인을 이끌었던 코리 르완도스키는 지난 6월 해고됐지만 정말로 트럼프의 곁을 떠난 건 아니라는 거죠. 충성심으로 신뢰를 얻은 르완도스키는 백악관 지근거리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면서 백악관을 들락이고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나눈다는 거죠.

트럼프를 만나려면 폭스뉴스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20명 가량하고만 통하는 건 아닙니다. 그는 쉬는 시간을 활용해 TV도 즐겨 보는데요. 폴리티코에 따르면 TV에 정치인들이 나와서 뭔가 이야기하는 걸 보고는 곧장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논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네요. 트럼프가 좋아하는 채널은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폭스뉴스입니다.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 폭스뉴스 캡처]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 폭스뉴스 캡처]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나 밀뱅크는 21일(현지시간) '트럼프의 함대(armada)는 어디 있나? 분명히, 폭스뉴스가 말하는 곳에 있다'는 칼럼에서 트럼프의 폭스뉴스 사랑을 비꼬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일 폭스비즈니스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매우 강한 함대를 보내고 있다"며 북핵 위협에 맞서 한반도 해역에 칼빈슨호를 급파했음을 시사한 바 있는데요, 막상 칼빈슨호는 트럼프나 미 국방부가 말한 것과는 전혀 반대 방향에 있다는 게 뒤늦게 확인돼 논란이 됐죠. 원래 한반도에 오기로 돼 있긴 했는데, 트럼프의 말대로 급하게 진로를 튼 게 아니라 당초 계획대로 천천히 오고 있었던 겁니다.
 
밀뱅크는 폭스뉴스가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는 걸 보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 생각 없이 그같이 인터뷰를 했을 수 있다고 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 브리핑은 멀리하고, 하루의 상당 시간을 폭스뉴스를 보는데 쓰면서 자기가 본 걸 트위터에 올리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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