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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우병우 사태의 반면교사

중앙일보 2017.04.24 02:53 종합 32면 지면보기
조강수논설위원

조강수논설위원

“가장 큰 원인은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었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 최순실과 내통하며 하수인 노릇을 했고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업무 수첩 56권에 대통령 지시 사항을 깨알같이 적어 두고 ‘왕명 출납’을 전담하며 희대의 범행에 가담했다.”
 

박근혜 정권 붕괴, 보필 못한 검사 출신 두 법률가 책임 커
한풀이 검찰 인사와 ‘수석놀이’ 우병우 극복해야 비극 막아

후대의 역사가들은 2017년 박근혜 정권의 붕괴에 대해 이렇게 요약·기술할 공산이 크다. 내가 역사가라면 이런 측면을 기록에 남기겠다. “가장 큰 책임은 두 법률가에게 있었다. ‘왕(비서)실장’ 김기춘과 ‘리틀 김기춘’으로 통한 우병우 민정수석이다. 청와대 2인자와 조선시대 대사간(大司諫) 격인 실세 참모는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 측근 비리 차단의 소임을 방기했다. 1992년 대선 정치 공작인 ‘초원복집 사건’에 연루됐던 김기춘은 옛날 검사스럽게도(?) 부녀 대통령에 대한 대를 이은 충성심 때문에, 우병우는 친정인 검찰에 대한 한풀이와 무소불위 권한을 휘두르는 수석 놀이에 취해 폐주(廢主)를 막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폐족(廢族)’의 일원으로 추락했고 불충한 참모의 전형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우병우의 불충은 보필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불거진 우병우 처가와 넥슨 간 1300억원대 강남 땅 매매 의혹 사건은 정권 몰락의 전조였다. 야당이 우병우 경질 공세를 강화하자 박 대통령은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고난을 벗 삼아…”라며 우병우 지키기의 전방에 섰다. 국민 정서와 거꾸로 가는 이런 모습은 불통과 오만의 상징으로 비쳤다. 이어진 최순실 태블릿PC 보도와 대규모 촛불시위는 대한민국의 루비콘강 도하를 촉발했다. 그때 박 대통령이 우병우를 청와대에서 내보내거나 우병우가 오기를 버리고 직을 던졌더라면 역사의 물줄기가 달라졌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 고집스럽게 눌러 앉아 버틴 것은 판단 미스이자 심각한 불충이었다.
 
박 대통령은 재임 중 검사 출신 법조인을 중용했다. 총리 두 명(정홍원-황교안), 헌재 소장(박한철)도 검사 출신이다. 민정수석은 예외가 없었다. 높은 충성도와 신속·정확한 일처리로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을 법하다.
 
그러나 우병우를 발탁·중용한 것은 패착이었다. 그는 조직에 한을 품고 나온 퇴직 검사였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 사건 주임검사였다. 수사 도중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검찰 책임론의 정중앙에 섰다. 이후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에 두 번 탈락했다. 그렇게 홀대를 받다 검찰을 떠났다. 최연소(20세) 사시 합격자이자 400억원대 재산 보유자가 감내하기 힘든 대접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박 대통령이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전격 기용하더니 이듬해 1월 민정수석으로 수직 승진시켰다. 그는 두 차례 검찰 인사를 통해 이른바 ‘우병우 사단’을 구축하고 여러 사건에 간섭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테니스장에 쌓인 눈을 같이 치우자고 했던 검찰 선배를 고검장 승진에서 배제해 사표를 내게 했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우병우는 노 전 대통령 서거 8년 뒤 자신이 보필했던 현직 대통령이 탄핵·파면되는 과정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전·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두 비극적 사건에 악역으로 등장한 셈이다. 그 자신도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에 대한 좌천성 인사 개입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우병우는 ‘연구 대상’이자 우리 사회가 넘어서야 할 벽이다. 검찰 특별수사팀-특검-검찰 특별수사본부를 거치며 세 차례 공개 소환돼 두 차례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도, 결국 기각된 피의자도 그가 유일하다. 정말 별다른 허물이 없는 것인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병이 발동해 수사 시늉만 한 것인지는 차기 정부에서 특별검사 임명 등을 통해 가려질 일이다. 미완의 우병우 수사는 두고두고 검찰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미 공직비리수사처 설치의 명분도 되고 있다.
 
우병우는 자신이 역사에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지 두려워해야 한다. 진(秦)나라 2세 황제를 섬기던 환관 조고(趙高)처럼 지록위마(指鹿爲馬)한 건 아닌지 되돌아보라. 법률적으로 죄가 없다고 다투더라도 처절한 자기 반성 없이는 용서받기 힘들다. 보름 후면 새 대통령이 탄생한다. 우병우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국가적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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