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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1500만 학부모의 표는?

중앙일보 2017.04.24 02:46 종합 35면 지면보기
양영유논설위원

양영유논설위원

“정말 한 번도 독대를 못했습니까?” “아쉽게도.” 현 정부 초대 교육수장을 지낸 서남수 전 장관의 말을 들었을 땐 황당했다. 정권 초기 교육정책이 얼마나 중요한데 16개월 동안 한 차례도 대통령(박근혜)과 일대일 대화를 못했을까.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른 장관들도 대부분 그랬던 거다. 지난해 1월 취임한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그나마 딱 한 번 독대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말이었다. “국정 역사교과서 적용시기를 연장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하자 “(침통하게) 꼭 그래야 하나요”라고 했단다.
 
교육계에서는 교육 소통을 많이 한 역대 대통령으로 YS(김영삼)를 꼽는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교육 대통령’을 자처하며 한국병 치유법의 하나로 교육개혁을 외쳤다. 집권하자 정말 일을 벌였다. 1995년 자율과 경쟁, 다양화와 특성화, 수요자 중심 교육을 담은 ‘5·31 교육개혁안’을 내놓았다. 개혁안을 주도했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이 생전에 들려준 얘기. “YS는 수시로 장관과 전문가들을 불러들였다. 교육을 잘 몰라 엉뚱한 질문도 했지만 들으며 머리를 빌리려 했다.”
 
5·31 개혁안은 정권이 흐르면서 변질됐다. 중요한 건 방향은 옳았다는 점. 그런데 2017년 오늘, 대선주자들의 공약은 그 개혁안을 물구나무 세운 듯하다. 큰 그림과 비전은 없고 서로 베끼고 우려내 당장의 표만 노린다. “폐지하겠다” “축소하겠다” 같은 부정적 용어가 수두룩하다. 수월성 교육은 죽이고, 대입은 더 간섭하고, 교육 컨트롤타워는 안갯속이고…. 뭐부터 하겠다는 것인지 우선순위도 없다.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의 고충을 헤아릴 청사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여론조사가 눈길을 끈다. 한 교육업체가 학부모 설문조사를 해 보니 10명 중 8명이 “후보 의 교육·보육공약을 따져 보고 투표하겠다”고 했다. 유치원과 초·중·고, 대학을 합친 학생 수가 1000만 명이니 학부모 유권자는 1500만 명쯤 된다. 대선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교육 주권’의 작동이다.
 
엊그제 한국교육정치학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그런 분석이 나왔다. 세계 48개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인 우리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교육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소신이 뚜렷하고, 터놓고 교육 고통을 들어줄 인물이 필요하다는 게 요지다. 학부모들은 그런 후보를 찾기 어렵다며 답답해한다. ‘급구, 교육 대통령!’이라는 현수막이라도 내걸어야 하는 걸까.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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