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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떠나기 전 마음 보듬어줄 전문가, 호스피스에 없어도 된다?

중앙일보 2017.04.24 02:30 종합 14면 지면보기
“내가 먼저 세상을 떠야 하는데….”
 

8월 시행 호스피스법 의무 인력기준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만 포함
환자·가족 영적돌봄 전문가는 빠져
“말기환자 대부분 심리적 고통 심해
29병상당 전문가 1명 의무화해야”
복지부 “국가자격증 아니어서 곤란”

몇 년 전 경북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말기 유방암 환자(50)는 자신의 통증보다 고3인 아들 걱정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했다. 아이가 엄마 걱정하느라 입시 준비에 집중하지 못하니 본인이 하루빨리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의료진·사회복지사로 구성된 호스피스팀이 나서 표현이 서툰 아들을 설득했다. 아들이 “엄마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며 엄마를 안아주자 환자가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이 환자처럼 호스피스 기관에서 삶을 마감하는 말기 환자에겐 통증 치료는 기본이고 영적(靈的)돌봄이 중요하다. 영적돌봄이란 말기 환자의 존재감 상실 같은 정신적·심리적 문제, 가족 간의 갈등 등을 깊이 상담하면서 문제를 풀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걸 말한다. 주로 종교인이 맡는다. 하지만 오는 8월 시행을 앞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시행령·시행규칙(하위 법령)에서는 호스피스 전문기관의 인력 기준에 영적돌봄 전문가가 빠져 있다. 현재 입법예고 중인 하위 법령의 인력 기준에는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를 두도록 규정돼 있을 뿐이다.
 
정극규 모현호스피스 진료원장은 지난 21일 ‘호스피스·연명의료법 시행규칙에서 자원봉사자와 영적돌봄의 중요성 제고를 위한 대토론회’에서 “우리 병동에 입원하는 환자의 95% 이상이 통증 때문에 입원하지만 이게 완화되고 나면 모든 환자가 비육체적 고통을 겪는다”며 “이는 의료 처치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적돌봄과 자원봉사 없는 호스피스는 기본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 원장은 미국 오리건주 통계를 제시했다. 오리건주가 존엄사법에 따라 의사조력자살(의사가 처방한 극약을 먹고 죽음을 선택)을 하려는 환자 991명(1998~2015년)에게 가장 큰 고통이 뭔지 조사(복수 응답)했더니 ‘독자적 의사 결정력 상실’이 91.6%로 가장 컸다. 다음이 ‘일상생활이 지루하고 재미없다’(885명), ‘존엄성 상실’(677명) 순이었다. 통증은 248명, 치료비 부담은 30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암으로 숨진 김모(78·여)씨는 공립 호스피스 기관에 석 달 이상 입원했지만 영적돌봄 상담을 거의 받지 못했다. 가족은 “병원에 종교인과 연결해 그런 서비스를 한다고 돼 있지만 실제 그렇게 하는 걸 보지 못했다”며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이종(호스피스완화의료국민본부 사무총장)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 규정에 따르면 호스피스 돌봄은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인 전인적 돌봄을 특징으로 한다. 영적돌봄은 말기 및 임종 과정 환자에게 죽음의 불안을 극복하고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60시간의 기초교육과 4시간의 보수교육을 받을 경우 관련 협회나 교단에서 영적돌봄 전문가 자격증을 발급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관한 각당복지재단, 케어라이츠, 서울대 SSK고령연구사업단은 ▶29병상당 1명의 영적돌봄 전문가를 의무화하고 ▶호스피스 전문기관 평가에 자원봉사자 활용 항목을 넣어 잘하는 곳에 가산점을 줘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채택했다.
 
이에 대해 이성우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사무관은 “영적돌봄 전문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국가자격증이나 면허증이 아니어서 법률 조항에 이를 담기 힘들고, 자원봉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합의가 되면 지침에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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