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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박사가 만든 인문학 패션, 뭔가 달라 먹혔지요

중앙일보 2017.04.24 01:07 종합 25면 지면보기
영국에서 국제경영(랑카스터대)을 전공하고 정치학 박사(워릭대)학위까지 받았는데 돌연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 본인 이름을 따 브랜드 ‘무홍’을 만든 첫해부터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서더니 4년이 흐른 지금은 밀라노의 안토니올리와 파리 레클레어 등 20여 개국 37곳의 유명 편집매장에 본인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해외에서 더 ‘잘나간다’는 김무홍(37) 디자이너 얘기다. 지난 13일 홍콩 편집매장 아이티(I.T) 플래그십스토어에서 열린 텐소울(디자이너 해외진출 지원 프로그램) 팝업 스토어에서 그를 만났다.
 

패션 디자이너 김무홍
20개국 유명 패션 편집매장에 입점
리모컨 설명서 등 활용해 디자인
옷에 문화 담아 바이어 마음 잡아

정치학 박사 출신의 늦깎이 디자이너 김무홍씨. 인문학을 패션에 접목시키는 일종의 복합 문화 콘텐트가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정치학 박사 출신의 늦깎이 디자이너 김무홍씨. 인문학을 패션에 접목시키는 일종의 복합 문화 콘텐트가그의 작품의 특징이다.[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정치학 박사가 왜 디자이너가 됐나.
“어릴 때부터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기 좋아했다. 그러다 박사학위를 받고 2012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어릴 적 어머니(한복 디자이너 문영희) 영향으로 가까웠던 옷을 통해 그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공부가 아깝지 않나.
“전혀. 국제경영과 정치학은 배우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지금도 디자인 작업하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인문·정치학 책을 꺼내 읽는다. 그러면 머리가 맑아진다.”
 
어머니가 유명 디자이너라 부담스럽겠다.
“데뷔할 때 어머니 명성에 기댄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어디에도 알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뜻을 존중해줬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알고 그 길을 제시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도와주지 않았다. 대신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을 지지했다. 대중적이지 않은 디자인이라 시장에서 외면받을 때도 있었는데 뜻을 굽히지 않도록 격려해 주셨다. 하지만 옷에 대한 평가는 솔직하다. 마음에 안 들면 ‘이상하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TV리모컨의 ‘안전주의사항’ 문구로 디자인 한 의상.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TV리모컨의 ‘안전주의사항’ 문구로 디자인 한 의상.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바이어에게 인기를 얻는 성공 비결은 뭘까.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은 트렌드를 무작정 좇는 경우가 많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 콘셉트를 고수하는데 그게 먹혔다. 유명 편집매장에서 옷을 구매할 때 이미 자신의 매장에 있는 옷과 비슷한 브랜드는 가져다 놓지 않는다. 개성 있는 브랜드만 구매 대상이 된다.”
 
해외 진출에 필요한 것은.
“옷만 잘 만들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복합적인 문화 콘텐트를 전달해야 한다. 나는 인문학과 패션을 연결시켰다. 가령 이번 2017 봄·여름 컬렉션 테마인 에브리데이 프랙티스(Everyday practice)는 박사과정 때 좋아했던 이론인 에브리데이 폴리틱스(everyday politics)에서 따온 거다. 전쟁이나 국제협약처럼 큰 사건을 통해 사회가 달라진다고들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소비습관처럼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축적되어 아래서부터 위로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는 정치학 이론이다. 무심하게 넘기는 생활 속 사사로운 것들로 컬렉션을 만들었다. 새로 산 TV 리모컨 포장지에 여러 나라 언어로 찍혀 있는 ‘안전주의사항’ 문구로 디자인 패턴을 만들어 옷에 넣은 식이다. 2015 봄·여름 시즌엔 계층간 소통에 집중했다. 영국 하층계급을 뜻하는 차브 복식문화와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테일러드 복식을 섞었다. 상반되는 계층을 섞었을 때 새로운 계층적 문화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취지로 만든 컬렉션이었다. 이 컬렉션으로 해외 유명 매장 바이어들에게 ‘새롭다’는 평가를 받았고 입점 기회를 얻었다.” 
 
홍콩=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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