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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꼭 잡는다, 일본 가는 최태원

중앙일보 2017.04.24 00:01 경제 3면 지면보기
최태원(사진) SK그룹 회장의 24일 일본행이 도시바 인수전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 SK그룹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은 최근 “항상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현장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보려 한다”며 일본행을 결정했다. 최 회장은 18일 4개월 만에 출국금지가 풀린 뒤 첫 해외 출장지로 일본을 택했다.
 

인수 핵심 열쇠 쥔 웨스턴디지털에
“장기 전략 함께 짜자” 손 내밀어
D램 반도체 호황에 사상최대 실적
세계 5위 낸드플래시 보완 역점

최 회장의 일본행만 봐도 SK그룹이 도시바 인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호황 덕에 지난해 4분기 1조5361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업계에선 이 회사의 영업이익이 올 1·2분기에도 각각 2조원에 이르고, 올해 전체로는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순항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약점은 낸드플래시다. 이 회사의 매출 비중은 D램이 72%로 낸드플래시(25%)의 세 배에 가깝다. D램 시장에선 확실한 세계 2위이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5위권에 불과하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을 가져올 경우 SK하이닉스는 1위 삼성전자를 바짝 붙어 추격하는 확실한 2위가 될 수 있다”며 “반면 다른 회사에 도시바를 빼앗긴다면 낸드플래시 시장 선두권에 진입하는 건 굉장히 힘겨운 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낸드플래시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도 SK가 도시바에 매달리는 이유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지난해 362억2800만 달러(41조원) 규모였던 이 시장은 2020년 460억900만 달러(52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저장장치인 낸드플래시는 D램과 달리 ‘기기 대수에 얽매이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라는 게 특징이다. 중앙처리장치(CPU)에 탑재되는 D램은 스마트 기기마다 한 개가 탑재된다. 스마트 기기가 불황에 빠져 팔리지 않으면 D램 매출도 줄어든다. 반면 낸드플래시는 저장할 콘텐트 용량이 늘어날수록 수요도 무한대로 늘어난다. 데이터 서버나 외장 메모리를 통해 계속 낸드플래시가 팔리기 때문이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스마트폰 데이터 용량이 늘어나며 마이크로SD카드를 별도로 구매해 사용하는 소비자가 많아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며 “메모리 반도체 중에서도 D램보다 낸드플래시 시장 성장세가 더 가파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번 인수전에 일본 재무적투자자(FI)와 손을 잡고 뛰어든 SK하이닉스는 미국 반도체회사 웨스턴디지털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SK그룹 핵심 관계자는 “인수전을 이끄는 SK측의 핵심 경영진이 최근 미국에서 웨스턴디지털 경영진을 만나 ‘손을 잡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태원 회장도 이번 출장길에 일본을 방문 중인 마크 롱 웨스턴디지털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 인수전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회사다. 이 회사는 2000년부터 도시바와 일본 욧카이치(四日市)의 반도체 공장을 공동 운영해왔다. 웨스턴디지털은 지난 17년간 이 공장의 장비 구입에만 1조4000억엔(14조원)을 투자했다. 웨스턴디지털은 최근 이를 내세워 도시바에 독점 협상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상대방의 합의 없이 합작기업 주식을 팔 수 없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내세운 것이다.
 
SK하이닉스가 웨스턴디지털과 손잡으려는 이유도 이런 제휴 관계에서 오는 이점 때문이란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차세대 핵심 기술로 떠오른 3D 낸드플래시 개발 역량을 내세워 웨스턴디지털에 “장기적으로 함께 발전할 전략을 짜자”고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웨스턴디지털이 최근 일본 관·민 펀드와 손잡는다는 보도가 나오며 인수전은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 일본 관민펀드인 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 미국의 사모펀드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웨스턴디지털이 합류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송용호 교수는 “20조원이 넘는 인수금액 을 감안할 때 특정 반도체 회사가 혼자 참여해 도시바를 사들이긴 쉽지 않다”며 “SK하이닉스로선 ‘누구와 손을 잡고 얼마를 낼 것인가’보다 ‘어떻게 회사를 키울 것인가’를 내세워 도시바와 일본 정부를 설득하는 게 최선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도시바 반도체 부문 2차 입찰은 다음달 중순 마감된다. 지난달 말 마감된 1차 입찰에선 대만의 훙하이가 최고 입찰금액(3조엔·31조원)을 써냈지만 "중국계 기업에 넘길 수 없다”는 일본 여론이 걸림돌이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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