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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 르포 3信…저성장이 뉴 노멀인 시대의 고민 깔린 선거

중앙일보 2017.04.20 18:23
 19일(현지시간) 파리 도심인 오스만 거리에 있는 라파예트 백화점 앞. 대낮인데도 히잡을 쓴 여성이 어린 자녀 두명과 이불을 깔고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깔리자 지붕이 있는 이 백화점의 화려한 쇼윈도 앞 인도엔 더 많은 노숙자들이 하룻밤을 지내려고 모여들었다.  

톨레랑스 포기 안 했지만 "프랑스만 세계의 기숙사 될 순 없다"

파리의 번화가엔 프랑스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이민자나 경쟁의 낙오자들이 관광객·쇼핑객들과 공존했다.
저성장이 뉴 노멀(New Normal)이 된 세계화 시대의 그늘은 파리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파리 번화가에서 도움을 청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뒤편으로 라파예트 백화점의 간판이 보인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파리 번화가에서 도움을 청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뒤편으로 라파예트 백화점의 간판이 보인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23일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만난 파리 시민들은 저마다 높은 실업률과 밀려드는 이민, 테러 위험 등을 어떤 후보가 해결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선거에서 단연 우선적인 이슈였다.  
 부촌 16구 거리에서 만난 파스칼 메르샹(49)은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높은 세금 때문에 정규직으로 직원을 채용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법인세가 33%나 되는데다 한 사람을 고용할 때마다 사업주가 내줘야 하는 비용이 많아 비정규직을 뽑을 수 밖에 없다“며 그같은 문제를 바로잡아줄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10% 수준으로 4%대인 독일이나 영국에 비해 훨씬 높다.
특히 25세 이하 젊은층은 정규직 채용 기회가 적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실업 문제는 자연스럽게 유럽연합(EU) 탈퇴 여부와 이민 정책에 대한 입장과 연결되고 있었다.  
 
중도파인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는 법인세를 대폭 낮추겠다고 공약했고, EU에 잔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극우 마린 르펜 후보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EU 탈퇴 여부를 검토하고 일정 기간동안은 이민을 전면 금지하는 강수까지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동차 관련 일을 한다는 보스 정디(27)는 “경제를 발전시키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우파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만 내놓고 있고 좌파 후보들은 기본소득처럼 무조건 퍼주자고 얘기한다”며 “경제를 위해서도 EU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크롱에게 한 표를 주겠다고 했다.
 
반면 건강보조식품 회사를 운영하는 에드와르 레(29)는 “유로존에 가입한 이후 프랑스 경제는 망하고 독일만 이득을 봤다. 나이지리아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프랑스 문화에 동화되지 못하고 분열을 일으키므로 제한을 둬야 한다”며 르펜 지지의사를 밝혔다.
 
밀려드는 이민에 대해선 정도만 다를 뿐 파리 시민 대부분이 불안감을 나타냈다. 
 
은행원 출신으로 르펜을 지지하는 에마뉘엘 베흐즈롱(45)은 “한국이나 일본 등은 자기 나라를 스스로 관리하지 않느냐“며 ”프랑스는 이미 프랑스인의 소유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 장벽을 세우고 EU에서 탈퇴하자는 르펜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말했다.  
 
상당수 시민들은 프랑스의 가치인 ‘톨레랑스(관용)’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 사이에서 곤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도심 번화가에서 만난 테레자(66)는 “캐나다 같은 나라는 매년 이민자 규모를 수치로 정하고 있는데 프랑스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며 “이민자들이 불어를 못해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서 사회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휴머니즘을 버려선 안된다는 생각은 확고하지만 프랑스만 ‘세계의 기숙사’가 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중동에도 잘 사는 나라가 많은데 이슬람 사회의 전쟁과 빈곤 문제는 이슬람 차원에서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함께 있던 길다(77)는 “대선후보를 노리는 테러를 모의한 두 명이 마르세유에서 체포됐다고 하지 않느냐. 경제는 물론이고 안보가 너무 취약해졌으니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의견을 피력하면 르펜을 찍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게 가장 황당하다. 이민을 무조건 막자는 르펜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프랑스의 차기 대통령이 EU 탈퇴를 추구하느냐 여부는 EU의 존속에 직결된 문제다. 
전통적으로 유럽 대륙과 거리를 둬온 영국의 EU탈퇴(브렉시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영국은 입국 심사를 거치지 않고 유럽내 출입국을 허용하는 솅겐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고 화폐도 유로화 대신 파운드화를 써왔다. 반면 프랑스는 EU의 핵심 기둥이다.   
 
프랑스 대선은 선진국의 수준 높은 복지가 지속가능한 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 기회이기도 하다.
복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세금을 거둬야 하는데, 정작 소득세를 내는 이는 프랑스 국민의 50% 정도다. 이들 사이에선 사회보장세까지 내고 나면 일해봐야 남는 게 없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고령화, 저성장, 실업, 복지, 그리고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변화에 대한 열망까지. 프랑스 대선의 이슈들은 한국과 많이 닮아있었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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