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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우리 시대의 경쟁

중앙일보 2017.04.20 03:14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기현서울대 교수·철학과

김기현서울대 교수·철학과

괴테는 “나는 인간이다. 그것은 경쟁하는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경쟁적이라는 증언에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적 살을 붙인다. 생물체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경쟁 속에서 헤엄치는 존재이며,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생존한다. 이 생존 경쟁의 메커니즘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변화하는 환경에서 또 새로운 경쟁의 레이스를 벌인다. 경쟁은 생물의 진화라는 긴 역사에 머물지 않고, 우리 문화에 속속들이 배어 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진급하기 위해, 돈을 더 벌기 위해, 조금 더 나은 몸매를 갖기 위해, 다른 이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경쟁의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상대방을 끌어내리기만 하는 경쟁은 파멸의 길
상호 존중의 품위 있는 경쟁 나선 후보 선출해야

경쟁이라는 단어는 피로를 연상시킨다. 승부에 집착하는 사람은 비호감이다. 우리 시대 경쟁의 이미지는 피할 수 없는 필요악 정도로 요약된다. 그러나 경쟁이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 경쟁은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하는 촉매제다. 우리는 경쟁에 참여하는 기회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나의 잘난 모습과 못난 모습을 깨달으며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성찰해 발전을 위한 미래 비전의 방향을 설정한다.
 
경쟁은 나태에 대한 해독제다. 경쟁을 통해 성찰을 갖춘 개인은 지금의 모습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개인의 모습들이 모여 인류는 발전해 왔다. 경쟁 없는 순수한 자아 실현만으로 개인이 발전하고, 인류가 발전했으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월드컵의 경쟁이 없었다면, 축구 기술이 지금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고, 과학적 연구의 보상을 향한 경쟁이 없었더라면 과학이 이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하는 목적이 없었다면 혁신과 창의성도 꽃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경쟁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다. 나는 스스로를 향상시켜서 당신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도 있고, 당신을 끌어내려서 이길 수도 있다.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과는 달리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것은 그다지 큰 인고의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혹적이다. 이런 정서가 팽배한 사회의 미래는 없고, 우리는 바로 이런 유혹에 직면해 있다.
 
우리 사회가 고속으로 발전하는 시대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었다. 사회의 발전과 확장이 주춤하면서 앞으로 달려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고도 성장의 과정에서 몸에 밴 경쟁 심리는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한데, 앞으로 나가는 길이 어려우니 상대방을 끌어내리고자 하는 유혹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 갈등이 팽배해지면서, 경쟁을 생각하면 피로를 떠올리게 된다.
 
경쟁의 순기능을 회복해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사회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부와 권력을 특정 세력이 독점해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진 상황에서는 발전을 통한 경쟁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구조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을 막기 어렵다.
 
그러나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유혹을 넘어 서로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발전적 공정 경쟁의 의식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제도적 변화를 기대하기 곤란하다. 의식의 변화가 제도의 변화를 낳고, 제도의 변화가 의식의 변화를 낳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때 우리 사회는 경쟁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 국가의 최고 권력을 지향하는 이들이 경쟁하는 모습은 국격의 잣대일 뿐 아니라,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도됨으로써 국민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선거운동은 이런 점에서 문화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우리 역시 문화의 구성에 참여할 수 있다. 누가 상대방에게 흠집 내는 끌어내리는 경쟁을 하는가, 누가 상호 존중의 품위 있는 경쟁을 하는가를 살펴 투표권을 행사하면 된다.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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