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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3주 후 대한민국

중앙일보 2017.04.20 03:06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건 그냥 상상이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협치·통합 말만 하지 말고
인사·사람으로 보여달라

2017년 5월 15일. 아침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는 활기가 흘렀다. 오늘은 국회에서 국무총리 인준 표결이 있는 날이다. 큰 무리 없이 통과될 것이다. 지난주 청문회도 요식행위처럼 지나갔다.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물론 보수의 적통을 주장하는 자유한국당도 크게 반발하지 못했다. 청문회는 유아무야, 간혹 덕담이 나올 정도였다. 언론에선 아예 ‘통과의례’란 제목을 뽑고 있었다. 날 세운 공격도, 무조건 국정의 뒷다리를 잡아채는 야당의 모습도 없었다. 하기야 사실상 국민투표로 당선된 총리 아닌가.
 
돌이켜보면 김종인 총리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투표 일주일 전 문재인은 승부수를 던졌다. “당선되면 김종인을 국무총리로 모시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그와 임기를 같이할 것이며, 헌법이 규정한 책임총리의 권한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이를 투표를 통해 국민의 뜻으로 확인받겠다고 했다. 사실상 미국 대선의 러닝메이트 부통령처럼 모시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완벽한 보수주의자’로 불린 마이크 펜스를 러닝메이트로 영입한 것과 같았다.
 
바짝 쫓아오는 안철수 후보를 떼어놓기 위한 초강수였다. 선거판이 본격 시작된 4월 중순 문재인은 핵심 구호였던 ‘적폐 청산’을 청산하고 대신 대통합·협치를 말했지만 중도·보수의 표심은 꿈쩍하지 않았다. 베레모를 쓰고 안보를 외쳤지만 ‘정서적 친북주의자’란 단단한 딱지는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안철수도 안보와 협치를 더 세고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화끈한 한 방, 차별화가 필요했다.
 
협치의 증거는 뭔가. 사람이다. 통합이라는 말을 믿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인사다. 적폐 청산의 진정성은 ‘내 안의 적폐부터 청산할 때’ 나온다. 협치의 왕도는 적(상대)의 사람까지 중용하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의 아이콘 김종인은 안보 보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문재인의 독선이 싫다며 당을 박차고 나간 ‘적’이기도 하다. 그를 삼고초려 끝에 모신 것으로 사실상 대선 레이스는 막을 내렸다. 다음 일은 그냥 순리대로 흘러갔다. 김종인은 신(新)보수의 적자로 떠오른 유승민을 경제 부총리로 지명했다. 유승민의 경제 철학은 더불어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터였다.
 
문재인은 무너진 4강 외교 복원도 협치로 시작했다. 안철수 후보에게 중국 특사를, 반기문에게 미국 특사를 부탁했다. 부처 개편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장관 임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이르면 이달 안에 조각이 끝날 터였다. 투표 전 많은 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누가 되든 박근혜 정부 장관들과 최소 두세 달은 동거해야 한다. 야당의 발목 잡기로 장관 임명은커녕 정부 조직 개편도 안 되는 큰 국정 혼란이 이어질 것이다. 총리 임명에만 해가 바뀔지도 모른다. 안보 불안으로 태극기 부대가 연일 광화문광장을 메우고 시위를 벌일 것이다.’ 김종인 국민투표 총리가 이 모든 우려를 잠재운 것이다. 비로소 대한민국 정치에 한줄기 빛이 보이는 듯했다. 문재인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냥 상상이다. 현실은 많이 다르다. 문재인은 4월 후보 수락 때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을 만들어 국정 혼란 기간을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캠프 내 분위기로 보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캠프 관계자는 “총리·장관 인선은 시기상조”라며 “노리는 사람이 많아 말도 꺼내기 힘들다”고 전했다. 게다가 인선을 미루는 게 확장성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실정이니 러닝메이트 총리는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닐 것이다.
 
이번 선거는 다르다. 초유의 야야(野野) 전쟁이다. 결국 확장성에서 승부가 날 것이다. 러닝메이트 총리는 현실 모르는 백면서생의 엉뚱한 상상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 상상력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나. 뭐는 못하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상대를 껴안는 후보, 100% 대한민국을 실천하는 후보, 그가 누구든 나는 그에게 한표를 던지련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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