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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울산공단 작업복

중앙일보 2017.04.20 03:05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정호논설위원

박정호논설위원

돌풍을 일으켰던 포켓몬고 게임의 영향일까. 박물관에도 증강현실(AR) 기법이 들어왔다. 기능은 간단하지만 제법 쓸 만하다. ‘울산의 기억’ 앱(APP)을 내려받아 전시 팸플릿 뒷장에 비춰보니 반구대 암각화가 나타난다. 선사시대 태화강에 살았던 사람과 동물이 스마트폰 화면에 뜬다. 박물관에 비치된 태블릿 PC로는 지금은 사라진 울산 해안가 마을도 볼 수 있다. 산업화에 밀려 고향을 등진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어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막한 ‘나도 울산사람 아잉교’ 특별전 풍경이다. 전시장 복판에는 대형 미디어 테이블이 설치됐다. 먼바다에서 들어오는 고래 모습부터 지난 수십 년 사이 인구 119만 명의 광역시로 급성장한 오늘까지 울산의 지난 세월이 줄지어 펼쳐진다. 그런데 현란한 디지털 기술보다 나의 눈을 더 빼앗은 게 있다. 허름한 작업복 두 벌이다. 하나는 한국인이, 또 다른 하나는 인도인이 입은 것이다.
 
한국인 작업복은 1980년 현대자동차 직원의 것이다. 당시 울산에서는 이 옷을 입은 사람에게 외상도 주었다고 한다. 신분증 비슷했다. 더 흥미로운 게 있다. 옷의 안과 밖을 뒤집으면 예비군 점퍼로 변신한다. 산업과 국방의 공존, 30여 년 전 우리 근로자의 얼굴이다. 인도인 작업복은 현재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의 것이다. 총인구의 3%가 외국인인 울산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울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업도시다. 1인당 소득 국내 1위를 오랜 기간 지켜왔다. 전시장에도 에너지가 넘친다. 62년 자립경제와 조국 근대화를 내세우며 추진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도표가 새삼스럽다. 제철·정유 등 제조업 발전계획이 빼곡하다. ‘마이 카’ 붐을 일으킨 국내 첫 고유 모델 승용차 ‘포니’, 국내 첫 초대형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도 빠질 수 없다. 그 모두 작업복에 맺힌 땀방울의 결정체다.
 
울산이 요즘 깊은 시름에 빠졌다. 미국·중국의 경제 역공에 활기가 예전 같지 못하다. 전시는 ‘빛나는 울산’을 노래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사람과 기술, 문화가 섞였던 울산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제주도에서 건너온 해녀의 호적부 대장, 다문화 2세대로 구성된 어린이 야구단 등 타향에서 들어와 울산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중심이다. 키워드는 수용과 포용, 너와 나의 경계 허물기다. ‘전진, 앞으로’를 외쳤던 산업화 세대에 대한 송가(頌歌)로도 들린다. 향후 울산은 또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울산은, 아니 우리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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