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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과 똑같네 … 2부리그 부천, 최강 전북 꺾어

중앙일보 2017.04.20 01:19 종합 28면 지면보기
19일 FC 서울과 FC 안양의 FA컵 32강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안양 팬들이 홍염 응원을 펼치고 있다.

19일 FC 서울과 FC 안양의 FA컵 32강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안양 팬들이 홍염 응원을 펼치고 있다.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마자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측 스탠드가 붉게 물들었다. 원정 응원에 나선 FC안양의 서포터스가 피워올린 수십 개의 홍염이 뿜어낸 불빛이었다. 붉은 빛이 잦아들자 이번엔 보랏빛 연기가 피어올라 관중석을 뒤덮었다. 스탠드 전면에 내건 대형 플래카드 속 글귀 ‘홍득발자(紅得發紫·아주 붉은 것은 이미 보라색이다)’를 형상화한 퍼포먼스였다.
 

이변 속출한 FA컵 4라운드
경남도 대구, 부산도 포항에 승리
상암선 ‘연고지 악연’ 두 팀 격돌
안양, 팬 불꽃 응원에도 서울에 져

안양 팬들은 ‘FC 서울’이라는 팀 명을 입에 담지 않는다. ‘그 팀’이라 에둘러 지칭하거나 ‘패륜’이라는 과격한 용어를 쓴다. 안양 연고로 프로축구 무대를 누비던 안양 LG가 지난 2004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FC 서울로 새출발한 데 대한 감정의 앙금 때문이다. 당시 축구팬들과 안양시민들이 LG제품 불매운동과 삭발식까지하며 연고 이전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10년 가까이 프로축구 불모지로 남아 있던 안양은 지난 2013년 FC 안양을 창단하며 비로소 한을 풀었다. 지역 축구팬들의 자발적인 창단 움직임에 자극 받은 안양시가 시 의회의 동의를 얻어 프로팀을 만들고 2014시즌부터 K리그 챌린지(프로 2부리그)에 뛰어들었다.
 
FC 안양은 안양 LG 시절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빨강 대신 보랏빛을 상징색으로 선택했다. 안양 팬들이 슬로건처럼 사용하는 ‘홍득발자’는 ‘보랏빛은 빨강의 상위색’이라는 의미로, FC 서울을 겨냥한 문구다. 관복의 색상으로 관직의 높낮이를 구분하던 중국의 옛 복식 체계에서 유래했다. 차상위(次上位)에 해당하는 붉은색 관복을 입은 관원에게 ‘머지 않아 자색 관복(최고위 관직을 상징)도 입으시라’고 덕담을 나누던 관습이 어원이다. 최대호 당시 안양시장 겸 초대 구단주는 창단식에서 “FC 서울을 통쾌하게 꺾는 그날, 62만 안양시민들과 함께 승리의 함성을 외치겠다”고 말했다. 팬들은 FC 서울이 보낸 축하화환을 부쉈다.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KEB하나은행 FA컵 4라운드(32강전)는 창단 이후 안양이 세 시즌 만에 처음 FC 서울과 맞붙은 경기였다. 김종필 안양 감독과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무조건 이긴다. 다른 결과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전의를 불태웠지만 경기력의 차이를 극복하진 못했다. 안양은 서울 공격수 윤일록(25)에게 두 골(전반 27분·전반 35분)을 내주며 0-2로 졌다.
 
경기 후 김종필 감독은 “끝까지 열심히 응원한 팬들에게 승리를 선물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황선홍 서울 감독은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안양이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면서 “선수들이 끝까지 집중한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안양이 꿈꾼 ‘언더독의 반란’은 프로축구 연고 이전의 아픔을 함께 겪은 프로 2부리그 부천 FC 1995가 대신 이뤘다. 부천은 이날 전주 에서 열린 K리그 최강 전북 현대와의 맞대결에서 전·후반과 연장전까지 120분간의 혈투를 0-0으로 마친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겨 16강에 올랐다. 지난해 이 대회 8강에서 전북을 3-2로 꺾은 바 있는 부천은 2년 연속 전북을 제압 했다. 부천은 지난 2006년 지역연고 프로축구팀 부천 SK가 연고지를 제주도로 옮겨 제주 유나이티드로 거듭난 이후 축구팬들과 부천시가 손잡고 만든 시민구단이다. 
 
글·사진=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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