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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즐기는 손흥민, 나보다 더 센 돌연변이”

중앙일보 2017.04.20 01:19 종합 28면 지면보기
차범근씨가 19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차범근씨가 19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31년 만에 내 기록이 다시 주목을 받으니 기쁘고 신기하네요. (손)흥민이 같은 뛰어난 후배들이 내가 세운 여러가지 기록들을 하나하나 뛰어넘어주면 좋겠습니다.”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64)을 19일 만났다. ‘차붐’은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공격수이자 ‘한국 축구의 희망’인 손흥민(25)을 어떻게 평가할까.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차범근을 만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시절의 이야기와 손흥민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차범근은 현재 다음달 한국에서 열리는 20세 이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유럽 최다골’ 재조명 받는 차범근
‘엄청난 허벅지’ 자기관리 대명사
“그 땐 살아남으려 죽기살기 뛰어”
천재성·노력에 환경 적응력 중요
“아기자기한 플레이 이승우도 주목
손흥민과 골 경쟁하는 모습 기대”

기성용-손흥민 [사진 기성용 인스타그램]

기성용-손흥민 [사진 기성용 인스타그램]

 
손흥민은 올 시즌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차범근 부위원장의 기록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지난 15일 본머스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며 올 시즌 19골을 기록, 차범근이 지난 1985-86시즌 레버쿠젠(독일)에서 세운 한국인 유럽리그 한 시즌 최다골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올 시즌 정규리그와 컵대회를 합쳐 7경기 이상을 남긴 손흥민이 차 부위원장의 기록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 손흥민은 이달 들어 4경기 연속골을 포함해 5골 1도움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차 부위원장은 19골을 터뜨릴 당시 독일 정규리그에서만 17골을 넣었다. 손흥민은 상대적으로 컵대회 득점(7골) 비율이 높다. 프리미어리그에선 12골을 기록 중이다. 차범근은 “유럽에서는 정규리그 기록만을 선수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컵대회는 경기 수가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상대팀 전력의 편차도 크기 때문”이라며 “기왕이면 흥민이가 이번 기회에 내가 세운 정규리그 득점 기록도 뛰어넘으면 좋겠다. 지금의 상승세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감하고 빠른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흥민이의 경기 스타일은 전성기 시절 나를 빼닮았다. 머리로 골을 넣는 능력만 보강하면 유럽 최고의 공격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리그에 동양인 선수가 드물던 1980년대 차 부위원장은 당대 최고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의 간판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 소속으로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을 두 차례나 차지했다. 지난 1989년 은퇴하며 남긴 정규리그 통산 득점(308경기 98골)은 1999년 스테판 사퓌자(스위스·106골)가 뛰어넘기 전까지 10년 간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최다골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차범근이 유럽 무대에서 맹활약한 비결은 철저한 자기 관리였다. 과학적인 몸 관리 방법이 자리잡지 않은 시절, 그는 덩치 큰 서양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매일 쇠고기 1㎏씩을 먹었다. 끊임없는 운동으로 단련한 터질 듯한 허벅지는 ‘차붐(차범근의 별명)’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독일 축구 레전드 로타어 마테우스가 “차붐을 처음 봤을 때 엄청난 허벅지 밖에 안 보였다”고 회상했을 정도다.
 
차 부위원장은 “나에게 유럽은 미지의 무대였다. 맨 땅에서 훈련했고, 기본기도 부족했던 내게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인 분데스리가는 동경을 넘어 공포심이 느껴지는 무대였다”며 “당시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버텼다. 30년 전 나와 비교하면 요즘 후배들은 경기를 충분히 즐기면서 뛰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고 했다.
 
축구계 일각에서 차범근과 손흥민을 묶어 ‘한국 축구의 돌연변이’ 라 부르는 평가에 대해 그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수긍했다. 축구 전문가들은 “골을 잘 넣는 선수는 언제든 나올 수 있지만 차범근이나 손흥민처럼 경기의 흐름을 지배하는 공격수는 쉽게 탄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돌연변이’의 탄생 요건으로 차범근은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특별한 재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재능이 전부는 아니다. 천재성만 믿고 축구를 하다 일찍 사라진 선수들을 많이 봤다. 결국은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아울러 세계축구전술 흐름 등 시대적인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네이마르-이승우 [사진 이승우 SNS]

네이마르-이승우 [사진 이승우 SNS]

차 부위원장이 기대하는 또 하나의 ‘돌연변이’는 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의 간판 골잡이 이승우(19·바르셀로나 후베닐A)다. 차 부위원장은 “나와 흥민이가 시원하게 파고 드는 스타일이라면 승우는 아기자기하게 만들어간다”며 “다음달 열리는 20세 이하 FIFA 월드컵이 승우의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축구를 뒤흔드는 돌연변이들이 자꾸 나타나 행복하다. 머지 않은 장래에 흥민이와 승우가 A대표팀에서 주거니 받거니 골을 넣는 모습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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