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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은 물 오르는데 소비는 찬 기운 여전

중앙일보 2017.04.20 01:00 경제 6면 지면보기
“최근 우리 경제에 봄기운이 느껴진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유화 호황 착시있지만
수출 5개월째 늘자 경기 낙관론
고용 회복 더뎌 체감경기는 겨울
봄 세일 시작한 백화점들도 울상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제7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이렇게 말했다. 유 부총리는 “1분기 성장이 당초 예상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지표도 우려했던 것보다 나은 모습”이라며 긍정적 전망을 쏟아냈다. 반도체가 이끈 ‘수출 훈풍’에 기댄 낙관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경기 회복세로 이어지는 건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수출 통계만 보면 봄기운이 완연한 건 사실이다. 수출금액은 다섯달 연속 늘었다. 석 달 연속 두 자릿수 상승이다. 반도체·석유화학 업종의 강세는 두드러진다. 지난달 반도체 산업은 전년 같은 달보다 42% 늘어난 75억 달러(8조5500억원)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금액(488억5000만 달러)의 15.4%다. 석유제품도 유가 상승 흐름 덕에 지난달 수출액(30억7743만 달러)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63%나 뛰었다.
 
수출이 늘며 기업의 설비투자도 늘 거란 기대가 나왔다. 최근 한국은행은 “지난해 2.3% 줄어들었던 설비투자가 올해는 6.3%로 크게 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정대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은 “반도체 분야의 투자개선에 따른 착시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산업계 전반의 현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중국 기업의 추격 등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는 몇몇 제조업은 2010년 이후 가동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10년 80.3%였던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지난해 72.6%였다. KDI는 최근 ‘설비투자 추이 분석’이란 보고서를 통해 조선업이나 전자부품·액정표시장치(LCD) 분야의 일부 제조업체에 대해 “사실상 ‘좀비기업’이 됐다”고 표현했다.
 
이들 기업이 2010년 이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설비 투자를 크게 늘렸지만 그만큼 일감을 얻지 못해 사실상 공장을 놀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 연구원은 “가동률이 낮은 몇몇 업종은 지난해 기준 가동률이 4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런 제조업 불황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같은 변수까지 겹쳐서다.
 
현대·기아차는 지난달 중국 판매량이 지난해 3월보다 52.2% 줄어든 7만여 대에 그쳤다. 미국 시장에서도 세단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등 고전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70년대에 집중투자한 중후장대 산업이 경쟁력을 완전히 잃어 구조조정 단계에 들어선 것”이라며 “반도체 호황에 가려 이들 산업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간과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수출 증대가 소비 시장에 ‘낙수 효과’를 뿌리는 것도 쉽지 않을 거란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이들 산업이 전형적인 장치 산업이라 고용 유발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소비가 좋아지려면 고용 시장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국민들이 경기 회복세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지금의 수출세가 지속된다 해도 하반기쯤 돼야 소비 심리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소비 시장은 아직 한겨울이다. 최근 봄 정기세일을 시작한 백화점들은 울상이다. 롯데백화점은 이번 세일 기간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현대백화점은 2.1% 줄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세일보다 3.2% 매출이 늘긴 했지만 매출 성장률은 지난해(7.8%)의 반토막 수준이다.
 
자영업 경기는 더 심각하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남성 무급가족종사자는 15만 명으로 1년 전 같은기간보다 1만6000명(11.7%) 늘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회사 같은 사업체에서 돈을 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이만큼 많다는 얘기다.
 
다만 대선(5월 9일) 이후까지 수출 증가세가 유지되면 소비 심리가 다소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의 소비 시장 위축에는 어수선한 정치 상황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며 “수출 경기가 하반기까지 회복세를 보이고, 대선 이후 조기 추경 편성 논의가 나오면 소비 심리가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임미진·성화선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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