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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독일군 위장귀순 대처법…역사적 평가는

중앙일보 2017.04.20 00:00
‘영국 본토 항공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1년 5월 10일, 독일의 Bf 110 전투기 한대가 북해를 가로질러 글래스고우 인근까지 침투하였다. 특별히 교전 행위를 하지 않던 전투기는 연료가 바닥나 추락하였고 낙하산으로 탈출한 조종사는 체포되었다. 그런데 조사를 받던 포로는 오로지 해밀턴 공작을 만나게 해달라는 의외의 요구만 하였다. 이에 조사 기관에 불려온 해밀턴 공작은 포로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 한 충격을 받았다.
 
헤스는 영국으로 귀순한 독일군 핵심 엘리트였다. []

헤스는 영국으로 귀순한 독일군 핵심 엘리트였다. [사진 wikipedia]

그를 찾던 포로가 히틀러의 후계자 중 하나로 언급되던 루돌프 헤스였기 때문이었다. 헤스는 1923년 뮌헨 폭동이 실패하여 수감되었을 때, 한방을 쓴 히틀러의 자서전 집필을 도왔고 정권을 잡은 후에는 ‘총통 대리인’이라는 직위를 부여받은 나치의 2인자였다. 히틀러 또한 ‘헤스는 당의 대리인이며 만약 나에게 일이 생기면 그가 나를 승계 한다’고 하였을 정도로 신뢰를 보냈다.

 
영국 군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헤스의 Bf 110의 파손된 기체. 나치 2인자가 전쟁 중 적국을 향해 날아간 희대의 단독 비행에 세계가 놀랐다. [사진 wikipedia]

영국 군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헤스의 Bf 110의 파손된 기체. 나치 2인자가 전쟁 중 적국을 향해 날아간 희대의 단독 비행에 세계가 놀랐다. [사진 wikipedia]


그러한 어마어마한 인물이 혈혈단신으로, 그것도 한창 전쟁 중이던 영국의 한복판으로 날아왔으니 전 세계가 뒤집힌 것은 당연하였다. 해밀턴 공작은 지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에 독일을 방문하여 헤스를 만난 적이 있어 구면이었다. 이렇게 헤스는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확실히 입증시킨 후 ‘영국 국왕을 만나서 이제 그만 전쟁을 끝내자고 진언하려 한다’며 자신이 영국에 온 목적을 말하였다.
 
헤스가 도버를 넘어와 찾았던 영국의 접촉 대상이 해밀턴 공작이다. [사진 wikipedia]

헤스가 도버를 넘어와 찾았던 영국의 접촉 대상이 해밀턴 공작이다. [사진 wikipedia]

나치가 밉지만 당시 영국은 적당한 선에서 강화를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아닐 정도로 위기였다. 그러나 헤스가 독일을 대표한 것인지, 아니면 적어도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가 거물인 것은 맞지만 단지 그의 말만 믿고 협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히틀러가 그의 영국행을 공개적으로 ‘정신 이상에 의한 행위’로 몰아붙였기 때문이었다.

전후에 히틀러의 집사였던 하인츠 링거가 당시 총통이 몹시 놀랐었다고 밝힌 것처럼 헤스의 영국행은 히틀러도 모르던 단독 행위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비난을 하였어도 히틀러는 헤스가 자신을 배신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헤스는 사건이 벌어진 1941년에 이르러서는 권력 핵심에서 서서히 밀리던 중이기는 했으나 1987년 자살하기 전까지도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충성심은 그대로였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당시에 피고로 출석한 (좌부터) 괴링, 되니츠, 헤스. 히틀러의 후계자를 놓고 경쟁을 벌였던 나치의 거물들이다. [사진 wikipedia]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당시에 피고로 출석한 (좌부터) 괴링, 되니츠, 헤스. 히틀러의 후계자를 놓고 경쟁을 벌였던 나치의 거물들이다. [사진 wikipedia]

그래서 이 사건은 괴링, 괴벨스, 보어만 같은 경쟁자들과의 충성 경쟁에서 앞서려던 헤스가 히틀러의 눈에 들기 위해 벌인 돌출 행동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시 연일 혈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한때 히틀러는 같은 게르만족이자 역사적으로 가까웠던 영국을 동맹 대상으로 고려한 적이 있었다. 헤스는 총통의 이런 의중을 잘 알던 인물이어서 영국과 강화를 이끈다면 점수를 딸 것이라 착한 것이었다.

이유야 무엇이든 굴러들어온 호박을 확보하게 된 영국은 고민이 컸다. 그러나 영국의 고민은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해결되었다. 소련도 나치 못지않게 거부감이 컸던 상대였지만 자연스럽게 독일이 공동의 적이 되면서 독일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헤스의 주장은 영국과 소련의 연결을 막기 위한 방해 행위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끝난 종전 후 벌어진 전범 재판에서 헤스는 ‘나는 양국 국민을 전쟁에서 구하지 못했으나 그렇게 노력한 것에 대해 행복하다’라고 진술하였다. 역사는 단지 공명심에 불탄 이의 돌출 행동으로 기록하였지만 전시에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심장부까지 홀로 날아간 것을 보면 알려진 것과 달리 어쩌면 진짜로 그는 전쟁을 멈추기를 원하였는지도 모른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남도현 군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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