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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후마니타스] 일상에 '도각도각' 리듬감 더하는 기계식 키보드의 매력

중앙일보 2017.04.19 19:28
직장인 배수진 씨는 기계식 키보드 세 대를 갖고 있다. 7년쯤 전에 게임을 즐기는 친구의 키보드를 반쯤은 빼앗아 써본 경험이 그를 기계식 키보드의 세계로 이끌었다. 지금은 사라진 잡지사 기자로 근무할 당시, 글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쓴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정전용량 무접점' 방식 등 숱하게 키보드를 갈아 치웠다. 지금 배씨는 대학원에서 소설을 공부하고 있다. 아직도 그의 책상엔 기계식 키보드 세 점이 나란히 놓여 있다. 배씨는 기계식 키보드의 매력을 '리듬감'이라고 정의한다.

오타가 적고, 타자를 치는 데 특유의 리듬감을 잘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스마트폰용 요식 배달 앱 스타트업에 근무 중인 개발자 이 모 씨도 약 4년 전 좋은 키보드가 쓰고 싶어 중고로 몇 대를 들인 것이 계기가 됐다. 그때부터 그는 '키캡' 모으기에 빠져버렸다. 기계식 키보드 대부분은 본체는 그대로 두고, 키캡만 별도로 교체할 수 있게 돼 있다. 쓰는 이의 취향이 반영된 나만의 키보드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씨가 현재 갖고 있는 기계식 키보드용 키캡 세트만 약 20점. 여기서 그치지 않고 키보드용 기판을 주문 제작해 키보드 제작에 뛰어들기도 했고, 각종 공동구매에도 참여하고 있다. 기계식 키보드 5점과 수많은 키캡 세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 모 씨는 기계식 키보드에 '덕질(마니아를 뜻하는 '오타쿠'·'덕후'에 행위를 의미하는 접미사 '질'을 더한 말)' 중이다.

모든 '덕질'이 그러하듯, 처음엔 흥미로 시작했다가 입맛에 맞게 커스텀 해보는 맛에 점점 빠져들었죠.

직장인 배수진 씨의 책상. 레오폴드 기계식 키보드(왼쪽)와 리얼포스(오른쪽) 제품이 놓여 있다. 상단의 작은 키보드는 레노버 제품. [사진 배수진 독자 제공]

직장인 배수진 씨의 책상. 레오폴드 기계식 키보드(왼쪽)와 리얼포스(오른쪽) 제품이 놓여 있다. 상단의 작은 키보드는 레노버 제품. [사진 배수진 독자 제공]

7년 경력(?)의 배씨, 4년 경력의 이씨처럼 국내에서도 기계식 키보드 마니아는 언제나 있었다. 다만, 그 수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컴퓨터는 거의 모든 이들이 쓰지만, 적게는 십 수만원에서 많게는 30~40만원을 줘야 하는 기계식 키보드에 누구나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덕분에 시장도 무척 작았다. 마니아들은 부족한 정보를 서로 온라인에서 공유하고 없는 물건은 공동구매나 심지어 공동제작으로 충당했다. 이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중고거래가 활발할 수 밖에. 판매가 중단됐거나 해외에서만 소량 생산된 제품, 키캡 등은 누군가의 중고 판매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식 키보드 초보적 분류
멤브레인 방식 -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2만원 짜리 키보드는 대부분 '맴브레인' 방식을 따른다. 맴브레인 방식은 기계식 키보드라 불리는 종류의 후손 뻘이다. 모든 키에 각각의 스위치를 달아야 하는 과거 기계식 키보드 방식 대신 가격이 싼 맴브레인 키보드가 지금의 주류가 됐다.
 
펜터그래프 방식 - 노트북 시장이 비약적으로 확대된 지금은 '펜터그래프' 방식의 키보드가 많이 쓰인다. 펜터그래프 키보드는 맴브레인 방식 스위치 위에 'X'자 모양의 구조를 올린 것이다. 노트북에 많이 쓰이게 된 것은 부품 두께를 얇게 만들 수 있어서다.
 
기계식 키보드 - 저렴한 멤브레인 키보드가 PC의 단짝이 되기 이전인 90년대 중반까지 키보드 대부분은 기계식으로 만들어졌다. 1990년 출시된 애플의 '애플 확장 키보드'와 같은 구형 제품은 '빈티지 키보드'라는 이름을 얻어 해외의 경매 사이트에서 비싼 값에 거래된다.
체리사의 적축이 적용된 기계식 키보드.

체리사의 적축이 적용된 기계식 키보드.

체리사의 청축이 적용된 기계식 키보드.

체리사의 청축이 적용된 기계식 키보드.

국내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기계식 키보드는 대부분 독일 체리사의 스위치가 적용된 제품이다. 스위치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지만, 흔히 쓰이는 스위치는 색깔에 따라 청축(파란색), 갈축(갈색), 적축(빨간색) 흑축(검정색) 등으로 나뉜다.
▶청축: 특유의 딸깍거리는 소리가 매력인 스위치. 하지만 소음 때문에 조용한 공간에서는 쓰기 어렵다.
▶갈축: 청축과 비슷하지만, 딸깍거리는 소리가 없는 스위치.  
▶적축: 키보드를 누르는 데 힘이 적게드는 편.
▶흑축: 반발력이 다른 스위치와 비교해 큰 편.
이밖에 알프스사의 스위치를 쓴 기계식 키보드나 중국 등지에서 만들어진 '유사축'이라는 별명을 가진 제품 등 수많은 기계식 키보드용 스위치가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정전용량 무접점 방식 스위치가 적용된 일본 업체의 키보드도 국내 키보드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다.
 
특허 만료가 시장 확대로...PC방 덕분에 인지도 ↑
소수의 마니아 사이에서 알음알음 확산했던 기계식 키보드는 최근 쓰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사이트에서는 지난 1월 전 세계 기계식 키보드 시장이 2020년까지 연 평균 17.9%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게임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수요가 높다는 점을 시장 견인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멤브레인 방식의 키보드와 비교해 높은 내구성과 빠른 반응 속도를 내는 기계식 키보드의 장점이 게임 마니아 사이에서 시장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계식 키보드의 가격이 떨어졌다는 점도 인지도와 시장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이 배경에는 특허 만료가 있다. 2013~2014년을 전후로 독일 체리사의 스위치에 걸려 있던 특허 대부분이 공개된 덕분이다. 중국 업체가 이 시장에 발 빠르게 접근했다. 이름이 있는 업체, 없는 업체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체리사의 스위치를 흉내낸 제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PC 주변기기를 만드는 업체들이 중국산 스위치를 수입해 키보드 완성품을 만들었다. 이 같은 제품은 국내 PC방을 중심으로 사용자 수요를 이끌어냈다.
 
신용산역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전문으로 취급, 판매하는 업체의 권태영 팀장은 "많은 PC방에서 기존 멤브레인 키보드 대신 기계식 키보드를 들여놓는 추세"라며 "값이 비싼 키보드일수록 이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PC방 업주 입장에서는 저렴한 기계식 키보드라도 들여놓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본체느 그대로, 키캡을 마음대로 바꿔 쓸 수 있다는 점도 기계식 키보드의 매력 중 하나. [사진 독자 이모씨 제공]

본체느 그대로, 키캡을 마음대로 바꿔 쓸 수 있다는 점도 기계식 키보드의 매력 중 하나. [사진 독자 이모씨 제공]

"기계식 키보드, 한 번 사볼까?" 싶다면
좋은 키보드의 '도각도각' 하는 경쾌한 울림은 일상에 리듬감을 선사한다. 직장인 배씨와 개발자 이씨의 사례처럼 기계식 키보드는 작가, 개발자, 게임 마니아 사이에서 특히 인지도가 높지만, 일반 사무 업무라고 활용하지 못 할 이유는 없다.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에서 게임을 즐기는 편이라면 화려한 외형을 갖춘 게임 주변기기 업체의 기계식 키보드를 알아보는 것이 어떨까. 키캡 하단에 LED를 적용한 제품이 많아 어두운 곳에서도 화려한 존재감을 뽐낼 수 있다. 해외에서 유명한 게임 장비 전문 업체의 기계식 키보드의 경우 15~20만원 선으로 값이 무척 비싸지만, 중국이나 국내 업체의 제품들은 절반 이하 예산으로도 쉽게 접해볼 수 있다.
용산 등지에는 다양한 기계식 키보드를 갖춰두고 방문객이 직접 '타건'해볼 수 있도록 한 업체가 많다.

용산 등지에는 다양한 기계식 키보드를 갖춰두고 방문객이 직접 '타건'해볼 수 있도록 한 업체가 많다.

화려한 외관이나 LED의 반짝임에 관심이 없다면 얌전하고 믿음직스러운 국내 기계식 키보드 전문 업체의 제품을 찾아보면 된다. 오른쪽 부분의 숫자 키 패드가 없는 이른바 '텐키리스' 기계식 키보드는 책상을 넓게 쓸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키를 누를 때 감각을 말하는 '키감'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4만원짜리 '싸구려' 기계식 키보드라도 취향에 딱 들어맞을 수 있다. 30만원짜리 제품이라도 취향과 어울리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다. 적은 숫자지만, 오프라인 매장을 내고 기계식 키보드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를 용산 등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프라인 상점에서는 대부분 '타건(미리 키보드를 쳐볼 수 있도록 함)'해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으니 직접 방문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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