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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먹고 세상을 떠난 조선 임금들

중앙일보 2017.04.19 16:57
 ‘ 금부 도사를 보내어 영월에서 사약(賜藥)하였으니, 그 공사(公事)가 지금도 금부(禁府)에 남아 있다.’(선조실록 3권)
 
과거 조선의 역사 속에도 약(藥)과 독(毒)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사약(賜藥)’이다. 임금이 죄를 지은 왕족이나 사대부에게 신분을 참작해 교수형이나 참수형 대신 ‘약’(藥)을 내려(賜)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명확한 문헌자료는 없으나 이 사약에 쓰인 재료가 ‘비상(砒霜)’이었을 것으로 사학자들은 추정한다. 비상은 비소(As)와 황(S)의 화합물로, 비석(砒石)에 열을 가해 승화시켜 얻은 결정체다. 한때 가래를 제거하는 거담제와 학질 치료약으로 쓰기도 했지만, 독성 때문에 현재는 쓰지 않는다. 조선의 임금들이 은수저를 사용한 것은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비상을 감지해 내기 위해서다. 음식물 속에 비상 성분이 들어있으면 비상 속의 황과 은수저가 반응해 표면이 검게 변한다.
  
조선의 임금이 은수저를 썼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수시로 독살의 위협에 시달려왔다는 얘기다. 조선 16대 왕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대표적이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소현세자는 인조의 냉대와 의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그는 귀국 두 달 만에 학질(말라리아)이 발병했고 3일 만에 세상을 떴다. 온대지역의 말라리아는 열대형과 달리 어린이나 노약자가 아니면 급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편을 보면 소현세자의 독살설이 설득력이 있다.
 
'세자는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소렴 때 시체의 얼굴을 싸는 검은 헝겊)으로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사람과 같았다.'
 
개별적으로는 해롭지 않은 음식이나 약이 될 수 있지만, 같이 먹으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을 먹고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임금도 있다. 조선 20대 왕 경종이다.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은 재위 기간 동안은 노론ㆍ소론의 당쟁 한가운데 있었다. 경종은 동생 연잉군(훗날 영조)이 올린 게장과 생감을 먹은 뒤 밤새도록 가슴과 배가 뒤틀리는 고통을 겪었다. 16세기 명나라 이시진이 지은‘본초강목’은‘게를 감과 함께 먹으면 복통이 나고 설사가 난다’고 쓰고 있다. 게와 감이 서로 상극이라 만나면 독이 된다는 얘기다.
 
며칠 뒤 의식을 잃은 경종에게 연잉군은 어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약이라며 인삼과 부자를 올렸다. 그날 밤 경종은 세상을 떴다. 만 36세의 한창 나이였다. 평소 체절직으로 몸이 더웠던 경종에게 인삼은 어울리지 않는 약재였다. 부자는 한방에서 약재로 쓰이기도 하지만, 부자에 있는‘아코니틴’이라는 물질은 신경전달물질의 움직임을 방해해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키는 식물성 독이다. 
 
이외에도 개혁군주로 불렸던 정조와 구한말 일본의 침탈을 한 몸으로 안아야 했던 고종 죽음의 원인도 독살이었다는 주장이 많다.
 
『조선왕 독살사건』을 쓴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문화연구소장은“한의학의 핵심은 ‘독을 어떻게 쓰는가’이다. 쓰는 방법에 따라 독이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후기에는 당파의 정책이 왕과 다를 때 권신들이 왕을 죽이는 방법으로 독을 많이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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