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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맹탕 대선’이 돼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2017.04.19 03:07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대통령선거에 불이 붙었다. 표를 얻으려는 이들의 다툼도 뜨겁지만, 표를 주려는 이들의 씨름도 못지않다. 야권끼리의 대결인 데다 유력한 두 후보의 차이도 예전 선거만큼 확연찮은데도 열기가 식지 않는다. 하긴 솥뚜껑만 봐도 놀랄 지경이니 안 그럴 수 있겠나. “대통령은 되고 싶었으나 대통령 일은 하기 싫었던” 대통령에 학을 뗀 유권자들이, 대통령은 되고 싶으나 대통령 일은 잘 못할 대통령을 다시 보지 않기 위해 눈에 불을 켜는 게 당연할 터다.
 

결과보다 이후가 더 중요한 응급실 대선
대한민국 재활 위해 경쟁자에 손 내밀라

하지만 나는 그만큼 열렬하지는 않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이번에는 ‘괜찮은’ 대통령을 갖게 되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 까닭이다. 유력한 두 후보가 못나서라기보다 두 사람이 딛고 있는 정치적 지형이 불안해서다. 안고 있는 정치적 부채가 위태로우며,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빈약해 보여서다. 자신만 못 보는 패권주의가 불안하고 자신만 동떨어져 있는 당론이 불안하다. 그런 모습으로 권력을 잡으면 의당 부채가 생길 텐데 스스로 가진 자산이 그만 못하니 필연적으로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처럼 부실한 체력으로 권력을 잡는 순간 적(대적)이 되고 마는 절반의 국민은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 절벽타기 국제경제와 외줄타기 북한이라는 위기 상수가 초래할 경제·안보 환경은 어떻게 뛰어넘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호의적 상황은 기대난이다. 전임자와 결코 다를 게 없는 출발점에서 시작해,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을 향해 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가정이지만 결코 낮지 않은 확률이 느껴져 섬뜩하다.
 
밥도 되기 전에 재 먼저 뿌리겠다는 게 아니다. 그만큼 의미가 다른 대선이기에 하는 말이다. 국가와 국민으로 보자면 대형 사고 후 심야에 급히 받는 응급처치 아닌가. 웃으며 병원 문을 나선다 해도 곧바로 뛰어다닐 상황은 아닌 것이다. 조심조심 손을 놀리고 차근차근 발을 디디며 뼈가 붙고 상처가 아물길 기다려야 한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제때 정량 먹고 발라야 한다.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될 보양식도 필수다.
 
누가 당선되든 활개부터 칠 일이 아니란 말이다. 자신이 완벽해서 선택 받은 게 아님을, 구멍이 많은데도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임을 잘 알잖는가. 스스로의 부실을 메우려면 외부로 눈을 돌려야 한다. 내부에선 돌려막기만 가능할 뿐이다. 그것도 마음에 맞는 것만 골라 쓰다간 전임자 꼴 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온 나라가 반년 동안 난리굿을 쳤고 그 결과로 치른 조기대선인데, 전임자의 잘못을 반복하는 건 그야말로 반국가 반국민적 범죄행위와 다름 아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야 하는 국정 농단의 유사행위다.
 
누가 돼도 여소야대다. 응급처치만 받고 겨우 거동하게 된 몸이란 얘기다. 부축을 받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선거에서 경쟁했던 다른 후보들한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아니, 내부 반대 따위는 무릅쓰고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보다 지지율은 덜 나왔을지언정 나보다 못하지 않은 인물들이란 건 스스로 잘 알 일이다. 진보를 대변하고 보수의 대안으로 지목 받는 유력 두 후보에게, 특히 유승민·심상정 같은 건강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는 꼭 필요한 보완재가 될 수 있을 터다.
 
안철수는 이미 국민내각 구성을 약속했고, 다행히 문재인도 ‘통합’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선거를 위한 일회용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국민과 약속을 했으면 좋겠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경쟁자들과 협치 또는 연정·연대를 논하겠다고 말이다. 골병 든 대한민국의 재활을 위해 쓴 약과 영양제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누가 되는 게 중요하지 않은 ‘맹탕 대선’이 돼야 한다. 결과보다 그 이후가 더 중요한 ‘응급실 대선’인 까닭이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설계하기 위한 ‘예비고사’로서 모든 주자가 끝까지 함께 뛰는 축제가 돼야 하는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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