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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상어 1만 마리, 해발 700m 지리산 자락서 키우는 까닭은

중앙일보 2017.04.19 01:18 종합 27면 지면보기
미국에서 철갑상어 종 보존을 연구하고 함양에 터전을 마련한 박철홍 대표. 자신이 키운 철갑상어를 들어보이고 있다. [함양=송봉근 기자]

미국에서 철갑상어 종 보존을 연구하고 함양에 터전을 마련한 박철홍 대표. 자신이 키운 철갑상어를 들어보이고 있다. [함양=송봉근 기자]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지리산 자락. 이곳에서 세계적인 품질의 캐비아가 생산된다. 국내 미쉐린(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밍글스’를 비롯해 아시아베스트50에서 ‘올해의 주목해야 할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톡톡’까지, 요즘 내로라하는 국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바로 이곳에서 난 캐비아를 사용한다. 바로 ‘안샘캐비아’다.
 

함양서 캐비아 만드는 박철홍 대표
지하 200m 암반수 끌어올려 키워
전통방식으로 질 좋은 캐비아 생산
‘톡톡’ 등 고급 레스토랑서 사용
“아직 큰돈 안 되지만 잠재력 믿어”

신선한 캐비아를 얻기 위한 과정은 깐깐하다. 산 철갑상어의 배를 갈라 막에 쌓인 알을 통째로 꺼내 난소조직과 알을 분리·세척하고, 이후 소금을 넣고 스며들 때까지 기다렸다 전용 케이스에 담는다. 이 과정이 2시간 안에 이뤄져야 하는데, 유통기한 역시 3개월로 한정한다.
 
이같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건 디노빌영어조합 박철홍(49) 대표의 철학 때문이다. 부경대(옛 부산수산대)에서 생물공학을 전공한 박 대표는 199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철갑상어의 종 복원과 정자세포 보존을 연구했다. 2002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이탈리아에서 철갑상어 수정란을 들여와 함양에 정착했다. 고향인 부산이 아닌, 그것도 해발 700m인 지리산 기슭에 농장을 꾸린 이유가 뭘까. 담수어인 철갑상어를 기르기 위해선 깨끗한 물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농장에선 지하 150~200m의 암반수를 끌어올려 사용한다. 박 대표는 “지표수는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지하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지하수는 늘 수질이 일정하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의 하루는 분주하다. 성숙한 철갑상어는 겉모습으로는 암수를 구분할 수 없어 한 마리씩 잡아 살짝 배를 갈라 암수를 구분해야 한다. 이후 암컷은 별도의 양식장에서 기르면서 알의 성숙 단계를 다시 체크한다. 난질이 가장 좋은 시기에 철갑상어의 배를 갈라 알을 꺼내야 하는데 그 시기가 2주 정도로 짧기 때문이다. 과숙이 돼버리면 알은 다시 철갑상어 몸 속으로 흡수돼 버린다.
 
박철홍 디오빌영어조합법인 대표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양식장에서 생산한 철갑상어 캐비어 완제품. [송봉근 기자]

박철홍 디오빌영어조합법인 대표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양식장에서 생산한 철갑상어 캐비어 완제품. [송봉근 기자]

세계 3대 진미인 캐비아는 30g짜리 한 통가격이 평균 10만원 중후반일 정도로 고가다. 농장에 있는 철갑상어 수가 1만여 마리니 박 대표가 당연히 그동안 큰 돈을 벌었을 것 같지만 그는 손을 내젓는다. 박 대표는 “철갑상어 양식을 당장 대박나는 사업으로 여긴다면 착각”이라고 했다. 철갑상어를 길러 알을 얻기까지 최소 6~7년이 걸리는데 제대로 된 캐비아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그 역시 스스로 마음에 드는 품질의 캐비아를 만드는 데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국내 캐비아 시장 규모가 너무 작아 당장 경제적 가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재력은 충분하다. 박 대표는 “한국 사람들은 활어와 선어를 구분하고 명란젓 등 생선알을 즐겨먹는 민족”이라며 “캐비아가 낯설어서 그렇지 맛을 알고 나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캐비아 사업은 외국에서도 안정화되기까지 최소 20~30년이 걸린다. 그는 "97년 오래 알고 지낸 이탈리아의 철갑상어 농장을 방문했는데 가족끼리 꾸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일을 하던 가족 구성원 중 누구라도 돌아올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또 다른 힘은 철갑상어에 대한 믿음이다. 그는 “철갑상어는 수명이 150년 정도로 길고 병치레가 없는 등 고유의 유전적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특징이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연구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함양=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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