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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에서 지면 후손에게 물려줄 일자리는 없다!”

중앙일보 2017.04.17 07:00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공격’에 국내 기업들이 바짝 움츠리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상징이었던 현대기아차마저 중국 서 주춤하고 있다. 지난달 판매량이 거의 반 토막 났단다. 중국은 그렇게 한국 기업을 시장에서 밀어낼 기세다.  
 

中 사드보복, 한국 기업 밀어낼 기세
중국 제조업은 지금 질적 변화 중,
‘홍색공급망’ 강화되면 한국 산업 위기
중국을 이길 클러스터를 만들던가,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해야

그 결과는 단지 중국 시장을 잃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장의 흐름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동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분업구조의 변화에 우리가 잘 적응하지 못한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드 차원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2016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지수 자료 중 국가별 산업 클러스터 비교 [자료 딜로이트]

2016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지수 자료 중 국가별 산업 클러스터 비교 [자료 딜로이트]

위 그래픽을 보자.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가 최근 펴낸 ‘2016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지수(2016 Global Manufacturing Competitiveness Index)’에 나오는 걸 뽑았다. 딜로이트는 ‘글로벌 제조업이 점점 더 클러스터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역별로 국가 클러스터 군(群)이 형성되고 있고, 나라 안에서도 업종별 또는 제품별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보고서는 위 제목을 구글 검색창에 치면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다).
 
크게 3대 권역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북미 클러스터, 중국·일본·한국이 이끄는 아시아 클러스터, 독일이 앞서고 있는 유럽클러스터 등이다. 역시 가장 큰 제조 클러스터는 아시아다. 이 지역에 있는 기술력과 자본, 그리고 풍부한 노동력이 결합하면서 다른 권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건 글로벌 얘기고, 그렇다면 중국에는 또 어떤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을까?
중국 내 산업별 클러스터 [자료 Li&Feng 리서치 센터]

중국 내 산업별 클러스터 [자료 Li&Feng 리서치 센터]

이 도표는 중국의 어느 곳에 어떤 산업이 발달하고 있는지를 대략 보여준다. 중국의 산업별 클러스터를 정리해 놓은 산업 지형도다(핸드폰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PC로 보길 권한다). Li&Feng 리서치 센터가 만들었다. 역시 구글 검색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그래픽이다.
 
중국에 ‘일촌일품(一村一品)’이라는 말이 있다. ‘각 마을마다 고유 상품이 있다’라는 뜻이다. 이게 산업화 시대에 들면서 도시 별로 고유의 상품을 특화 발전시킨다는 것으로 발전했다.  
 
필자는 베이징, 상하이 특파원 시절 그런 도시를 여럿 취재했다. 쩌장성 성저우(嵊州)라는 곳은 넥타이를 만드는 도시다. 전 세계 넥타이의 약 60%(한 해 약 1억6000만 장)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하이닝(海寧)이라는 도시는 가죽(피혁) 제품 도시다. 가죽 관련 공장이 빼곡하다. 불산(佛山)이라는 광저우 옆 도시를 가면 잠실운동장 서 너 개쯤 될법한 도자기 시장이 펼쳐져 있다. 장쑤성 쑤저우-쿤산에서는 세계 노트북PC의 70%이상이 생산된다. 그런가 하면 상하이 해안가에는 조선(造船)클러스터가 둥지를 틀고 있다.
성저우의 한 넥타이 도매상 [사진 이매진차이나]

성저우의 한 넥타이 도매상 [사진 이매진차이나]

중국 제조 클러스터에 질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원래 이들 제조 단지는 독자적으로 운영될 수 없었다. 완제품 생산은 그곳에서 하지만, 그 완제품 생산을 위해 필요한 중간재(부품이나 반제품)를 일본·한국·대만 등에서 가져왔다. 그런데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중간재를 일본이나 한국에서 수입하지 않고도, 국내(중국)에서 조달한다. 자기완결형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쑤저우의 노트북PC공장은 더 이상 한국에서 LCD패널을 수입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폴리에틸렌을 들여가던 후베이(湖北) 이창(宜昌)의 페트병 공장은 주문을 끊은 지 오래다. 대만의 학자들은 이를 두고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이라고 했다. 모든 제조공정이 중국에서 완성되는 '자기 완결형(full-set)'공급구조다.
 
중국의 홍색공급망이 탄탄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당신이 노트북PC 용 가방을 생산하는 가방공장 사장이라고 하자. 마케팅을 위해 삼성전자나 LG전자의 구매담당자를 접촉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노트북PC를 만드는 회사는 거기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삼성전자에 가서 “노트북PC용 가방을 공급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구매담당자는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쑤저우로 가서 알아보세요. 우리 노트북PC는 모두 거기 공장에서 생산됩니다…  

삼성전자 쑤저우 공장 [사진 중앙포토]

삼성전자 쑤저우 공장 [사진 중앙포토]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노트북PC를 만드는 공장이 없다. 삼성도, LG도 모두 브랜드만 붙어있을 뿐 제조 지는 쑤저우 노트북PC 클러스터에서 만든다. 이젠 노트북PC관련 업체라면 당연히 쑤저우로 가야 한다. 가방공장 역시 다르지 않다.
 
클러스터가 강력해지면 그렇게 주변의 관련 기업과 산업을 빨아들인다. 블랙홀처럼 말이다. 변두리에 어정쩡하게 있다가는 ‘폭망’하기 십상이다. PC관련 업체라면 쑤저우로 가고, 에틸렌을 만드는 화공관련 업체라면 이창 곁으로 가야 한다. 글로벌 주문이 점점 그 클러스터로 몰려드는데 어찌 견디겠는가?
 
클러스터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지면 산업 전체가 ‘폭망’할 수도 있다. 중국도, 한국도, 일본도 클러스터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설마 '폭망'까지야… 

그렇게 생각했다면, 너무 안일하다.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아래 사진 말이다.
[사진 중앙일보 캡쳐]

[사진 중앙일보 캡쳐]

결국은 클러스터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서 지면 기업을 빼앗기고, 또 일자리를 빼앗기고 맙니다. 방법, 있지요. 중국의 클러스터를 이길 수 있는 우리 클러스터를 조성하던가, 중국 클러스터를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우리 아들 딸들에게 물려줄 일자리는 없습니다.

- 안현호 전 지식경제부 차관
 
차이나랩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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