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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주기' 팽목항 지킴이로 남은 찬민 아빠

중앙일보 2017.04.16 15:56
세월호 사고로 단원고에 다니던 아들 조찬민군을 잃은 뒤 그리움 속에 전남 진도로 이사를 온 '팽목항 지킴이' 조인호씨가 빨간 등대를 가리키고 있다. 조씨는 미수습자 가족들이 떠난 팽목항에서 임시분향소 관리와 함께 추모객 안내를 맡고 있다. 진도=프리랜서 오종찬

세월호사고로단원고에 다니던 아들 조찬민군을 잃은 뒤그리움 속에전남 진도로 이사를 온 '팽목항 지킴이' 조인호씨가 빨간 등대를 가리키고 있다. 조씨는 미수습자 가족들이 떠난 팽목항에서 임시분향소관리와 함께 추모객 안내를 맡고 있다.진도=프리랜서 오종찬

세월호는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전남 진도 바다 아래에서 수면 위로 올라와 목포신항으로 옮겨졌다. 미수습자 9명의 가족도 3년 가까운 팽목항 생활을 정리하고 세월호를 따라 거처를 옮겼다.
 

아들 장례식 치른 뒤 며칠 만에 진도 다시 내려와 정착
팽목항 찾은 유가족과 추모객 안내부터 주변 청소까지

그러나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은 16일까지도 아직 진도를 떠나지 못한 이가 있다. 단원고 2학년 희생자 조찬민(당시 17세)군의 아버지 조인호(53)씨다.
 
조씨는 참사 33일 만에 아들의 시신을 찾았다. 이후 곧장 경기 안산으로 올라가 장례를 치렀다.
 
사고 당시 아들을 구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식을 먼저 보낸 괴로움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장례를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아 다시 진도로 향했다.
 
조씨는 "아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곳이라 그런지 진도에 오니 왠지 찬민이와 가깝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산에 있을 때보다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사실 진도에 내려온 결정적 이유는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었다. 조씨는 세월호 사고가 나기 수년 전 부인과 이혼했다. 찬민이가 초등학생 때 무렵이다. 그때부터 찬민이와 찬민이의 형 등 두 아들과 떨어져 지냈다.
 
안산 반월공단의 원단 공장에 다니던 조씨는 생계를 꾸리느라 바빠 아들들에게 제대로 관심을 갖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두 달 전 찬민이를 만났을 때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그걸 같이 못본 것도 아픔으로 남았다. 뒤늦게라도 찬민이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로 내려온 조씨는 다른 유가족의 진상 규명 활동을 조용히 돕기 시작했다. 팽목항을 지키며 수시로 찾아오는 유가족을 맞았다. 팽목항 임시 가족 숙소 주변 쓰레기 줍기, 임시분향소 관리 등도 맡았다. 
 
팽목항 지킴이 조인호씨와 진도 주민이 미수습자 가족들을 위해 선물한 2마리의 진돗개 중 한 마리인 '팽이'. 진도=프리랜서 오종찬

팽목항 지킴이 조인호씨와 진도 주민이 미수습자 가족들을 위해 선물한 2마리의 진돗개 중 한 마리인 '팽이'. 진도=프리랜서 오종찬

 이곳을 처음 찾아온 이들은 조씨를 유가족이 아닌 자원봉사자로 착각하기도 한다. 조씨 자신도 유가족이지만, 다른 유가족을 더 챙기는 데다가 잡일을 마다하지 않아서다. 조씨는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내고 피켓을 드는 다른 부모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진상 규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조씨는 지난해 6월에는 주소지를 아예 안산에서 진도군 임회면 고방리로 옮겼다. 진도에서 일자리를 구해 생활하며 팽목항을 지키기 위해서다.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와 본 적 없는 진도였지만 적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진도 농민회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수시로 찾아와 진심 어린 위로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씨는 더 이상 유가족도, 미수습자 가족도 남지 않은 팽목항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진도 주민이 팽목항의 미수습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선물한 진돗개 두 마리 '팽이'와 '목이'와 함께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목포신항에서 팽이와 목이를 키우기 어려워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방안을 고민했지만 조씨의 요청으로 팽목항에 남겨뒀다.
 
조씨는 논이나 밭에 일손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으면 일용직으로 일을 하는 날을 빼놓고는 아침 일찍 팽목항으로 달려갔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귀가해서도 찬민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들에 대한 그리움 속에 2014년 4월 16일을 산다.
 
조씨는 "세월호가 육지에 거치된 만큼 우선 하루라도 빨리 9명의 미수습자를 찾고 이어 왜 사고가 났는지, 왜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인지 진상 규명까지 이어진다면 그때야 훌훌 털고 진도를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도=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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