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개미가 저축 많이 한 탓" 겨울 되자 베짱이의 애먼 화풀이

중앙일보 2017.04.16 15:4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구조적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이 14일(현지시간) 내놓은 재무부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일단 회수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한국의 원화는 저평가돼 있으며, 이는 경상수지 흑자를 뒷받침한다. 환율 개입 관행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겠다"고도 했다. 무역적자와 무역대상국의 환율에 대한 인식 자체는 바뀌지 않은 모습이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경우 언제든 환율 조작국 지정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국민소득 항등식으로 풀어본 미 무역적자의 정체


과연 미국은 무역적자의 책임을 한국·중국·일본 등 대미 무역 흑자국에만 전가할 수 있을까. 또 그 원인이 환율 때문이기만 할까. 미국 무역적자의 정체를 벗겨보자. 


미국은 지난해 4812억 달러(약 538조원) 등 매년 수천억 달러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101개 국가로부터 무역적자를 겪고 있으며, 10대 교역국 중에서 무역흑자를 거둔 나라는 영국뿐이다. 마셜 플랜과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등 여러 대외원조 활동을 벌인 결과, 미국은 전 세계를 달러 시스템으로 묶는 데 성공했다.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기축통화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막대한 무역적자인 셈이다.
 
무역적자는 한 국가 경제에서 발생한 총공급과 총수요 간에 불균형의 결과물이다. 무역적자의 발생은 실제 수요보다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며, 무역흑자는 실제 수요보다 소비가 적게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이 만성적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저축보다 소비가 많다는 얘기다. 이는 경제학 원론에 등장하는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개념적 수식인 ‘국민소득 항등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GDP란 한 국가 영토 안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부가가치 총합이다. GDP는 국가경제의 총수요·총공급과 같으며, 이를 국민소득(Y)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국가경제의 소비 수요가 얼마나 되느냐’(지출)는 최종소비자인 가계의 ‘소비지출’(C)과 민간 영역의 ‘투자’(I), ‘정부지출’(G), 해외 수요로 인해 국내에 쌓인 부가가치를 뜻하는 ‘순수출’(X-M)을 더해 구할 수 있다.
 
치킨집을 예로 들면 닭고기와 밀가루, 식용유 등 원재료를 구입한 비용은 소비지출(C)이며, 치킨을 팔아 남은 돈으로 가게를 확장하거나 새 튀김기계를 구입한 것은 투자(I)다. 여기에 정부의 창업 보조금(G)과 물량이 부족한 이웃 치킨집에 치킨을 꿔주거나 꿔온 순수출(X-M)을 모두 더하면 치킨집의 총공급이 된다.
 
‘국가경제에 얼마만큼의 자금이 있느냐’(소득)는 가계의 소비지출(C)과 가계·기업이 국가에 낸 세금(T), 그리고 나머지 저축(S)을 더한 값으로 측정한다. 치킨집이 치킨을 팔아 번 돈으로 구입한 원재료 비용(C)과 국가에 낸 세금(T), 그 나머지 돈인 저축(S)의 합이 치킨집의 총수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백악관 내 사우스 코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기업인들과의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재계 인사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백악관 내 사우스 코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기업인들과의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재계 인사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AP=뉴시스]

 
국민 경제는 소득·지출과 분배 측면의 총액이 같다(삼면등가의 법칙)고 전제한다. 다시 말하면 ‘Y=C+I+G+(X-M)=C+S+T’라는 수식이 항상 성립한다는 의미다. 이 항등식을 이용해 순수출(X-M)의 정체를 끄집어내 보자.  
 
일단 투자(I)와 정부지원금(G), 순수출(X-M)의 합은 세금(T), 저축(S)의 합과 같다(I+G+(X-M)=S+T). 소득과 지출 측면 양측 모두 원재료 구입비가 포함돼서다. 치킨집은 어떤 돈으로 투자를 할 수 있을까. 치킨을 팔아 원재료를 구입하고 세금(T)을 내고 남은 돈(S)에 정부지원금(G)과 옆 가게와 거래한 금액(M-X)을 모두 모으면 나의 투자(I)가 얼마인지 알 수 있다. I를 결과값으로 수식을 만들면 ‘I=S+(T-G)+(M-X)’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웃 치킨집과 거래한 금액은 흑자일 수도, 적자일 수도 있다. 내가 치킨을 많이 빌렸다(수입)면 적자가, 많이 빌려줬다(수출)면 흑자가 발생한다. 이는 가게가 한 저축(S)에서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에서 납세액을 뺀 돈, 그리고 투자액을 제외하면 순수출의 결과를 알 수 있다(X-M=S+(T-G)-I). 순수출은 민간·정부 저축에서 투자를 제외한 수치라는 의미다. 내가 실제 벌어서 저축한 돈과 정부 지원금과 납세액 간에 흑·적자 규모에서 투자한 금액을 빼면 치킨집의 총저축(NS)이 된다. 결과적으로 ‘순수출’(NX)의 값은 국민총저축(NS)에서 투자를 뺀 것과 같다는 뜻이다. ‘NX=NS-I’.
 
순수출이 적자라면 국민총저축이 투자보다 적다는 뜻이며, 흑자라면 국민총저축이 투자보다 많다는 의미다. 미국의 지난해 순수출은 -4999억 달러(약 -558조원). 물론 개념식이기는 하지만, 미국 국민들은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더 많은 TV와 자동차를 구입하고 더 많은 여행을 떠났다는 얘기다.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인 데 비해 소비시장 비중은 30%에 달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지난해 순수출은 74조1509억원 흑자였다. 그만큼 허리띠를 조이고 저축을 많이 했다는 의미다. 
 
국가 경제 입장에서 보면 총공급과 총수요에 차이가 없어 무역수지가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어느 한 쪽으로 쏠림이 발생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난다. 한국의 62개월 연속 무역흑자 기록은 심각한 내수부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심각한 재정적자와 투자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벌이고 있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국경조정세 도입, 리쇼어링 정책 등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허리띠는 졸라매지 않고 해외 기업을 끌어들여 국내 투자를 부양하겠다는 계산도 포함돼 있다. 저축 않고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가 개미의 저축을 뺏어 더 많은 돈을 쓰겠다는 심보인 셈이다. 
 
실제로 미국은 그동안 국채(빚)을 팔아 해외의 저축을 수입해 왔다. 중국과 일본의 미 국채 보유량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2조2500억 달러.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나라들에 빚을 내 국내적으로 저금리를 유도하고 있다. 저금리는 주택경기와 주식시장을 부양시키며, 이는 곧 자산효과로 이어져 소비를 진작시킨다. 만약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국에서 흑자국으로 돌아선다면 미국의 금리가 오르고 달러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무역흑자가 반드시 미국 경제를 건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칼럼에서 “미국이 저축을 못해 성장이 어렵다면 중국·독일·일본 등으로부터 저축을 수입해야 하며, 대규모 적자를 감당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트럼프 홈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트럼프 홈페이지]

박형중 대신증권 마켓전략실장은 “미국의 무역적자 축소 정책은 미국으로 들어가는 자본의 감소를 뜻하며, 이는 곧 소비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현재 추진 중인 대규모 인프라 사업도 당장 가계의 임금 수준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달러가 너무 강하다"고 했다. 그날 외환시장에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주요국 통화가 일제히 올랐다. 달러 패권을 자랑하는 미국은 역시 예외적인 존재인가 보다.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은 외환시장에도 적용된다. 브라운브라더스 해리먼의 외환전략가 마크 챈들러는 "만약 저 발언을 다른 나라의 정상이 했다면 통화를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유하기
광고 닫기